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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ㆍ고통 받는 집시의 음악은 깊은 곳에 있는 마음도 끌어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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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ㆍ고통 받는 집시의 음악은 깊은 곳에 있는 마음도 끌어내죠"

입력
2014.05.2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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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브레고비치는 “고향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며 “일상 생활에서도 음악의 존재감이 매우 큰데 사람들이 저녁에 모이면 열 번에 일곱 번은 노래로 끝난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제공
고란 브레고비치는 “고향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며 “일상 생활에서도 음악의 존재감이 매우 큰데 사람들이 저녁에 모이면 열 번에 일곱 번은 노래로 끝난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제공

'웨딩 앤 퓨너럴 오케스트라'와 LG아트센터서 공연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동지 '집시의 시간' '언더그라운드' 등 예술영화 음악으로 유명세

"집시는 골칫덩이 아닌 예술가 이번 무대 지루할 틈 없을 것"

올 초 프랑스에서 집시 중학생이 수학여행을 하다 불법체류자란 이유로 추방돼 큰 파문이 일었다. 정부의 집시 추방정책에 법원까지 손들어주자 일부 시민이 항의했지만 정부는 강경 노선을 고수했다. 좌파 사회당 출신 내무장관마저 “집시들이여, 프랑스를 떠나라”라고 소리쳤다. 프랑스뿐만 아니다.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는 민족, 수백만 집시들이 유럽 전역에서 겪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집시 음악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구슬프다. 한(恨)의 정서라면 어느 민족보다 깊다. 하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흥겹고 자유 분방한 것도 집시 음악의 특징이다. 거기엔 서유럽 음악에서 찾기 힘든 초현실적이고 마술적인 상상력이 있다. 집시의 고향인 발칸 반도에서 나고 자란 고란 브레고비치(64)의 음악이 그렇다. 예술영화 애호가들에겐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1988), ‘언더그라운드’(1995)의 음악으로 잘 알려진 그는 한국에서 2005, 2006년 두 차례 공연했다.

6월 7일 ‘웨딩 앤 퓨너럴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서는 그를 이메일로 미리 만났다. 그는 “처음 서울 공연 땐 내가 몸 담았던 록 밴드 ‘비옐료 두그메’의 공연이 예정돼 있어서 리허설만 하느라 호텔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고, 두 번째 공연 땐 트럼펫 연주자가 한국에 오지 못해 전체 공연을 다시 구성하느라 일만 했다”며 “이번엔 서울을 구경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공연 제목은 ‘집시를 위한 샴페인’(Champagne for Gypsies)이다. 2년 전 발표한 앨범 제목과 같다. 작곡가이자 가수이며 기타리스트인 브레고비치를 비롯해 19명이 무대에 올라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을 연주한다. 6명의 브라스 밴드, 2명의 여성 성악가, 6인조 남성 성악가 그리고 현악 4중주가 ‘웨딩 앤 퓨너럴 오케스트라’를 구성한다.

브레고비치는 이 앨범에 대해 “최근 유럽 전역에서 집시들이 겪은 극심한 압박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며 “집시들이 최근 유럽 전역에서 핍박을 받고 있지만 집시들은 이 세상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매우 재능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집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담은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집시 연주자들의 뛰어난 재능을 널리 알렸다.

브레고비치의 고향 사라예보는 지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지만 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유고슬라비아 땅이었다. 나라를 잃은 그는 국적 대신 스스로를 ‘발칸인’이라고 말한다. “나라를 빼앗긴 뒤 고국이란 지리나 정치적 영역이 아니라 심리적 영역에만 있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국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1991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지만 그는 프랑스의 집시 추방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다.

브레고비치는 음악가로서 다양한 삶을 살았다. 가톨릭 신부를 꿈꾸던 소년은 스트립 바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음악에 처음 매료됐던 순간이 그때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20, 30대엔 록 밴드 비옐료 두그메의 멤버로 록 스타가 됐고, 40대엔 영화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다. 50대 이후엔 웨딩 앤 퓨너럴 오케스트라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는 “여러 개의 삶을 산 것 같다”면서도 “어떻게 보면 항상 같은 음악을 해왔는데 단지 한번은 기저귀를 찼고 지금은 평상복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고 했다.

발칸 지역의 음악에는 강렬하고 복잡한 리듬이 있다. 집시 음악은 절제하고 숨기는 일이 없다. 감정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끌어 내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낯선 느낌을 줄지언정 지루할 틈을 주진 않는다. 브레고비치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저는 구성이 탄탄하고 지루하지 않은 음악을 만드는 현대음악 작곡가입니다. 요즘엔 흔치 않은 음악이죠. 로큰롤 시절의 쾌락주의적인 면도 계속 갖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해 단순한 곡을 쓰든 오케스트라를 위한 어려운 곡을 쓰든 언제나 반드시 작업에는 재미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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