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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정의… 그런 '평형수'를 다 쏟아내고 우린 위험하게 살아왔다

입력
2014.05.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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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한 지 35일째가 된 20일 비가 내리는 전남 진도 팽목항의 방파제 난간에 '아프고 시리고'라고 쓴 띠가 걸려 있다. 진도=연합뉴스
세월호가 침몰한 지 35일째가 된 20일 비가 내리는 전남 진도 팽목항의 방파제 난간에 '아프고 시리고'라고 쓴 띠가 걸려 있다. 진도=연합뉴스

모두가 대혁신을 외치지만

이상하게 프레임이 커질수록

몸체만 큰 배를 난바다에

띄우는 것 같아 불안감도 커져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그 무엇은

작은 생명까지 측은히 여기고

이익을 합리적으로 나누며

다른 이의 고통에 숙연해지는…

인간의 선함을 되살리는 것

내겐 언제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내게 늘 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우리는 세월호 이야기는 아예 입에 담지도 않았다. 우리가 만나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헤어진 장소에서는 세월호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었지만, 약속이나 한 듯 모두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충격으로 넋이 빠지고, 분노의 꼭지점에 있는 자들은 쉽게 위로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위험수위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멈추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세월호 침몰 후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긴박한 사고 현장을 생생하게 보곤 한다. 그러는 동안 고통은 점점 강해진다. 눈 앞에서 배가 점점 기우는 것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곧 배가 바다로 가라앉을 것 같은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선실 안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며 묵묵히 그 상황을 인내하고 앉아 있다. 결국 배가 물 속으로 모습을 감추기 직전의 상황이 온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해야 할 사람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애가 탄다.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교신 내용은 이상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드디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직면한 고통을 공유하는 내 눈앞이 캄캄해지고, 그들의 절망에 숨이 막힌다.

일찍이 철학자들이 말했다. 상상력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그것은 인간이 가진 소중한 덕목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덕목을 가진 사람인데, 그것을 가졌음이 고맙기는커녕 이런 체질을 타고 났다는 사실이 징그럽도록 싫다. 한 마디로 이 일은 나의 용량을 훌쩍 뛰어넘는다.

알 수 없는 것은, 누구를 만나도 세월호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기피 현상이다. 훨씬 약한 강도이긴 했지만, 내겐 이와 비슷한 기억이 있다.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되어 “나는 살고 싶어요!”를 외치다 피살된 김선일 씨의 사건을 접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극도의 공포에 짓눌려 있던 그의 동영상과 생생한 목소리를 보고 들으면서 내 나라의 외교적 무능함에 절망했고, 생환된 다른 나라 인질들과 달리 그가 처형된 뒤엔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내가 걸어 다니고 있는 길 곳곳이 사지인 것 같은 불안감, 이런 곳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불행감이 뒤섞여 있는 컴컴한 감정. 그런데도 이익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당신들이 살고 있는 이곳이 낙원입니다”라는 식의 현란한 말로 우리를 교란시키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암담함.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계속되어 왔고, 멈추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내 다시 살아가야 한다며 돌이켜 보니 김선일 씨 사건을 겪었을 때도, 세월호를 보면서도 나는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전문가에게 상담이라도 받아야겠다. 너무 힘들다”라고.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도와줘야 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은 정작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기에 다른 사람을 상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들의 이성은 대체 어떤 것이기에 분노와 불행감이 뒤섞여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 중에도 나는 오늘도 혼자 중얼거린다. “어린아이가 종이배를 냇물에 띄워도 그보다는 더 신중했겠다!”

그와 동시에 유대인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직접 체험한 비인간적인 행위를 글로 남긴 프리모 레비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도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과거를 극복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같았으나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프리모 레비. 그를 통해 극단의 상처란 인간의 영혼에 들러붙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빨아대는 흡반 같은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그 동안 알지 못했던 평형수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슬픔, 분노, 사랑, 정의감, 죄책감 같은 여러 감정을 통해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도 잘못을 깨닫는 것도 인간에겐 삶이 환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 주는 평형수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다양한 감정을 모두 쏟아내 버리고 위험천만하게 살아왔다. 효율성을 강조하며 눈 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다 보니 이익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 따윈 아예 제거해 버린 채.

이번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들, 끔찍했던 최악의 인명 구조 등등에 대한 마무리가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잘 지켜봐야겠다. 대통령도 국민 앞에 머리 숙이고 눈물까지 보이며 우리 사회의 일대 혁신 의지를 보였다. 심지어 해경 해체라는 극단의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다. 분노한 민심을 잠재워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가장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유족들의 고통에 무딘 듯했기 때문일까? 모두 한 목소리로 외치는 대혁신과 큰 변화도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지만, 이상하게도 프레임이 커질수록 몸체만 큰 배를 난바다에 띄우는 것 같아 불안감도 커진다.

세월호 사건을 처음 대했을 때 참담한 마음을 곱씹으며 내가 처음 한 말은 “내 마음이 이럴진대 유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였다. 그러다 그들의 고통이 내 고통임을 깨닫고 잠 못 드는 많은 밤을 보내며 다시 입 밖으로 뱉은 말은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지?”였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땅에서 자신을 지도자라고 느끼는 소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가장 불신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을 신뢰할 수 있다면 이럴 때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심지어 그들 중 누군가가 곧, 그것도 비유랍시고, 터키 탄광폭발사건이나 방글라데시 배 침몰 사건과 세월호 참사를 비유하며 “그것에 비하면 세월호 사건은 그래도...” 하는 식의 말 폭탄을 터뜨릴 것 같아 아슬아슬함까지 느낀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진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반드시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해야 우리 사회가 고통을 딛고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있다면!) 상처는 그냥 둔 채 생살을 찢어 그 고통에 놀라 어쩔 수 없이 환부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생살이 찢긴 곳은 너무도 아프고, 고통을 감수하며 제대로 도려내야 할 환부는 너무 넓고 깊어 암담하다.

헤어날 길 없는 무기력감에 휩싸여 있는 나에 비해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몫을 비장한 심정으로 느끼는 것 같다. 지난 토요일, 생명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만난 어떤 젊은이는 “미안한 말이지만 연세 높으신 분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신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젊은 자신들이 변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 암담하다고도 했다.

조심스럽게 나는 그가 말한 ‘그 무엇’은 인간의 선한 감정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하찮은 작은 생명까지도 측은하게 여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선함이 있어야 이익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최소한의 인륜도 모르는 사람들을 어디부터 꾸짖으며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지 당황스런 사태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선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배가 침몰한 뒤 한 번 더 국민들을 절망시켰던 수습 과정의 대혼란도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세월호 때문에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제주도를 여행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온 가족이 두 달 전부터 날짜를 맞추고 숙소와 교통편까지 예약해둔 상태라 ‘애도의 뜻을 담은 여행’으로 삼자는 내 말에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애들이 아직도 물 속에 있는데 늙은이가 거기 가서 웃으며 돌아다닐 수는 없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마저 죄스러워해야 하는 현실 앞에 나는 되뇌인다. 그런 마음도 유혹과 욕심이 많은 인간에겐 평형수 같은 거라고.

시인 조은/2014-05-23(한국일보)
시인 조은/2014-05-2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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