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19일 중국군 장교 5명을 미 6개 주요기업과 노동조합을 31차례 해킹한 혐의로 정식 기소하면서 미중간 사이버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질 조짐이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중국은 물론 외국정부 관계자를 해킹 문제로 기소한 건 처음이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며 주중 미국대사를 초치하고 양국이 설치한 사이버 안보 관련 실무그룹 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미 정부는 기소된 인민해방군 소속 상하이 61398부대 장교 5명의 기소장과 얼굴 사진까지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들은 2010~2012년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 철강기업 US스틸, 특수금속기업 ATI, 알루미늄업체 알코아, 미 철강노조 USW, 태양광업체 솔라월드의 컴퓨터 내부망에 불법 침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킹은 주로 미중 간 무역협상이나 사업 입찰 때 이뤄졌으며, 빼낸 제품 정보와 직원 신상 등은 중국 관련 기업에 제공됐다. 미 정부가 장교 5명의 신병 확보 없이 기소를 강행한 것은 해킹 배후에 중국 군대가 있음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기소 형식을 빌려 중국 정부를 공개 비난한 외교적 행위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강력 반발했다. 정쩌광(鄭澤光)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이날 맥스 보커스 주중미국대사를 초치, 미국 법무부의 기소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겅옌성(耿雁生)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중국은 인터넷을 통해 상업 비밀을 절도하는 활동을 한 적이 없다”며 “강력하게 분개한다”고 말했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중국이야말로 미국의 사이버 공격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사이버 안전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든 양국 실무그룹 활동 중지를 발표한 뒤 “상황을 봐서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도 맞대응하겠다고 나서 사이버 첩보전을 둘러싸고 양국이 정면 충돌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킹 문제는 지난 2년 간 미국과 중국 양국의 최대 현안이었다. 정상회담이나 주요인사 대화 때마다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올랐던 점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해에는 미 국방부가 이 같은 해킹 뒤에 중국 군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중국을 압박했다. 또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지난 달 방중에 앞서 중국 측에 미국의 사이버전략 정책 브리핑을 하며, 전략적 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압박과 설득에 중국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결국 미 정부가 중국군 장교 5명을 기소하는 칼을 빼든 것으로 보인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조치는 법률 집행의 문제”라고 파장을 경계하면서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여러 번 중국의 기업 해킹 문제를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는 미 정부가 앞으로 해킹 문제에 공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해킹수사는 향후 러시아 이란 시리아 등지로 확대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은 산업부문 해킹으로 매년 240억~1,200억달러의 정보와 기술을 도난 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취할 보복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 국방부가 이번 기소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논평을 거부한 채 신중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기업 해킹이 계속된다면 얼마든지 추가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미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차이나텔레콤이나 AT&T의 해킹을 통해 중국의 핵무기, 일본과 영유권 분쟁 의도 등을 파악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번 사건 관련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은 물론, 중국을 해킹해온 군과 정보기관 인사들의 이름을 공개하며 정면 대응할 조짐이다. 관영 신화망(新華網)은 20일 중국 국가인터넷판공실 대변인과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중국 인터넷을 공격한 최신 자료를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이 대변인은 “미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밀 절취자이며 중국 인터넷을 가장 많이 공격하는 국가”라며 “지난 3월 19일부터 5월 18일까지 두 달간 미국에 서버를 둔 2,077개의 트로이목마 등 악성코드가 중국 내 118만개 서버를 직접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16개 미국 IP가 중국 내 1,754개 사이트를 5만 7,000여 차례 공격했다”고 덧붙였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는 “중국이 미국 정부와 동일한 수준으로 보복 조치를 하거나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 키스 알렉산더 전 국가안보국(NSA) 국장을 기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미중 사이버전은 상호 보복조치로 확산일로를 걷게 된다. 이번에 공개된 6개 해킹 피해 기업과 노조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미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미 기업 3,000곳이 해킹을 당했으며 연방수사국(FBI)은 해킹 주체가 대부분 중국 경쟁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중의 사이버 신경전이 뜨거워지는 데는 해킹의 허용 범위에 대해 두 나라간 인식이 다르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미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정부기관을 상대로 한 첩보전과 산업스파이전이 다르다는 생각을 분명히 해왔다. 국가안보상 정보를 얻기 위한 첩보활동으로서 해킹은 용인되지만, 국가기관이 나서 기업정보를 취득해 자국기업에 제공하는 행위는 범죄라는 논리다.
그러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사이버안보전문가 제임스 루이스는 “중국은 국가안보와 경제적 목적을 위한 해킹에 분명한 구분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국은 에드워드 스노든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폭로한 NSA의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해킹 사실을 거론하며 미국의 이중성을 비난해왔다. 미국이 1990년대 경제협상 때 일본 대표의 자동차를 도청한 적도 있어 중국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각국이 주요 무역협상 때 정보기관을 동원해 상대국을 도ㆍ감청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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