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거리 곳곳에는 역사가 숨어있다.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상옥은 종각역 3번 출구 앞에서 종로경찰서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1923년 당시 종로경찰서는 일제 폭압의 상징이었다. 민족운동의 본거지 YMCA와 극장 우미관 터를 지나 종로3가역에 오면 길 한쪽에‘6.10만세운동 선창 터’라고 쓰인 표석과 마주선다. 이 조그만 표석 덕분에 복잡하고 소란스런 도심 속에서 90년 전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을 상상할 수 있었다.
사라진 역사문화 유적지에 표석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둔 시점이었다. 국제적 이목이 집중된 만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교육적인 자료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내에는 총 320여 개의 표석이 산재해 있다. 적지 않은 표석의 숫자만큼이나 형태와 재질, 문안의 형식 등이 제 각각이고 오류도 많다. 서울시는 2016년까지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표석 정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지난달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장 확인 결과 대대적인 정비 보다 표석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접근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더 시급해 보였다.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광화문과 북촌 종로 을지로 등 도심에 설치된 표석 80여 개를 답사했다. 그러나 역사문화적 가치나 의미를 짚어보는 것은 고사하고 표석을 찾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상당수가 주소로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눈에 안 띄는 장소에 설치되어 있었고 노점상이 좌판의 일부로 활용하거나 대형 시설물에 가려진 경우도 있었다. 후미진 골목 전봇대 옆에 세워진 표석은 그나마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인 경우다. 서울시의 최신 현황 자료를 들고서도 여운형 집터와 중학당 터 등 9개는 끝내 찾지 못했다. 이정표나 탐방 지도 하나 없는 현실에서 표석을 찾아나서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상안내서비스 역시 먹통이었다. 스마트폰으로 표석에 부착된 QR 코드를 인식하면 동영상과 함께 상세정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인데 전혀 작동 하지 않았다. 2년 전 30여 건의 영상을 제작해 납품한 서석준 스튜디오홀호리 대표는 “공들여 제작한 콘텐츠가 운용부실로 작동이 안되고 있어 안타깝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고장 사실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서울시는 19일 “서버교체작업으로 문제가 발생해 담당자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표석의 역사적 가치를 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나 탐방프로그램 역시 전무한 상태다. 163개로 서울시내 자치구 중 가장 많은 표석을 관리하는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표석을 활용한 탐방프로그램 운영 여부를 묻자“지금 있는 문화재에 집중하기도 벅찬데 흔적도 없는 표석에까지 어떻게 신경을 쓰겠나”라고 반문했다. 19일 보도자료를 통해“당시 모습은 사라졌지만 표석을 통해서라도 시민과 관광객들이 그 당시를 상상하고 서울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깊이와 결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힌 서울시의 바램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공허할 뿐이다.
사진부 기획팀=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최흥수기자 choissoo@k.co.kr
그래픽=강준구기자 wldms461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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