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사제서품을 받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서울 금천구 시흥동 판자촌을 방문했을 때 먼발치에서 배현정 원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푸른 마음으로 온전히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 변함없이 젊고 아름답다는 찬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염수정 추기경)
법무부는 20일 ‘세계인의 날’을 맞아 정부과천청사에서 유공자 17명에게 대통령표창 등 정부 포상을 수여했다.
대통령표창 중 올해 신설된 ‘올해의 이민자 상'은 42년간 사회적 약자에게 인술을 펼치고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벨기에 출신인 마리 헬렌 브라쇠르(68ㆍ한국명 배현정) 전진상의원 원장이 수상했다.
배 원장은 벨기에 출신 간호사로 1972년 국제가톨릭형제회 파견으로 한국에 왔다. 70년대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으로 점철된 한국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온 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으로 1975년 시흥동 판자촌에 무료 진료소인 ‘전진상(全眞常) 가정복지센터’를 열고 본격적인 의료봉사 활동에 돌입했다. 전진상이란 온전한 자아봉헌(全), 참다운 사랑(眞), 끊임없는 기쁨(常)의 정신을 줄인 말이다.
당시 주민 대다수가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주말에는 의료봉사자의 도움으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주중에는 간호사로서 말기 암 환자 가정을 방문해 월평균 1,500명을 보살피면서 이들에게‘파란 눈의 천사’로 불렸다.
그는 우리가 접해온 일반 의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환자가 생활하는 환경을 알아야 병의 근본 치료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환자가 찾아오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가계도를 작성하는 등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무료 진료소 운영에 한계를 느낀 그는 1985년 가톨릭 중앙의료원에 편입해 3년 만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도 매달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면서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200여명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는 등 환자의 경제력에 따라 진료비를 다르게 책정하고 있다. 일부에게는 매달 생계비와 양육비,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또 1988년부터 실시해온 호스피스 활동을 보다 전문적으로 실시하고자 97년 1월 전진상 가정 호스피스팀을 결성해 말기 암 환자들과 마지막 삶을 함께하고 있다.
법무부는 “1990년대부터 가톨릭대 의대 의학과 및 간호학과 학생 등에게 영세 빈민들의 고통과 어려운 점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실습지도에 힘써 가정의학과 진료의 모범을 보이는 등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의 의료인의 역할을 제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배 원장은 이번 수상에 대해 “전진상 정신에 따라 제 일을 한 것뿐인데 큰 관심을 보여줘 많은 위로가 된다”며“앞으로도 소외 이웃들에게 더 많은 의료 혜택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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