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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개조’를 하겠다면

입력
2014.05.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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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가 대개조’의 의지를 보였고, 국무총리는 관계부처에 그 실행방안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총체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슬픔에 잠긴 국민들을 위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데 여전히 선뜻 지지를 보내기 어려운 것은 그 방향과 절차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발전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고도성장의 달콤한 과실에 취해있는 사이, 생명, 건강, 행복과 같은 삶의 가치들이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가치 전도’의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 실패’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는 유의할 점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국가가 시민들의 기초적인 이해와 요구를 이행하지 못한 국가의 실패지만, 그 대안은 아래로부터 형성된 시민들의 자율적인 힘이 자본과 권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초하에 정치·사회질서가 재편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가 대개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통령의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에는 걱정스러운 대목이 많다. 그 ‘결론’에 대해 왈가왈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해안안전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대수술이나 민관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정도의 목표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에 그치지 않고, 해경 해체, 안전행정부 전면 개편, 공무원채용제도 개혁 등 상당히 구체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는 점에 있다. 무엇보다 아직 사고의 원인이 다 밝혀지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불과 몇 주 만에 섣부른 대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이 의아하다. 대통령 대국민담화 중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여아 정치권과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한 것인데, 여기서 도출될 결과를 바탕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 국가 대개조가 절실하긴 하지만, 촌각을 다툴 일은 아니다. 일단은 구조 작업을 조속히 완료해야 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사고의 원인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 선차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전제하에서 비로소 과제가 도출되는 것이 근대화된 국가의 정상적인 프로세스다. 압축 근대화의 그늘은 바로 이렇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과제들을 졸속 미봉책으로 처리해온 관행의 산물이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안전행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안전행정조직은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이었다. 물론 이번 참사를 계기로 그 적절성을 재고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 시행 1년 만에, 그것을 정면으로 뒤집는 개편안을 스스로 내놓았다면, 원래의 안이 졸속이었나 아니면 불과 몇 주 만에 뚝딱뚝딱 만들어진 이번 안이 졸속인가? 이런 식으로 정부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무엇을 신뢰하고 어떤 시점에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런 식으로는 좋은 안이 만들어질 수도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국민통합’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진다.

해경 해체나 공무원채용제도 개편도 마찬가지다. 대수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기존 제도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해경의 잘못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최소한 해경의 자체 평가와 입장은 들어보고 추진하는 것이 순서다. 개혁대상이 된 조직의 반발에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과 그 조직의 의견조차 청취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해체’ 결정에 박수를 보내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국가가 운영되어온 방식, 시민사회와 국가가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온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국가 대개조’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국가주도형 압축근대화가 만들어낸 부산물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바로 그 원인이 된 방법과 동일하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냐는 얘기다. 이 와중에 피해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들을 대거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것이 ‘국가’가 알아서 할 테니 시민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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