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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나비

입력
2014.05.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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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나비였다. 검은 나비.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고 창밖을 날고 있었다. 처음엔 제비라고 생각했다. 그만한 크기였고, 움직임에도 제법 속도감이 있었다. 다만 날쌔다기보다는 어딘가 위태롭고 어수선한 궤적. 눈을 가늘게 뜨고 창문 밖으로 머리를 길게 빼보고 나서야 나비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큰 나비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빠르고 초조한 나비도 처음이었다. 제비나비라는 이름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창밖에는 꽃밭 같은 게 없었다. 변변한 풀이 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왜 여길 맴도는 걸까. 날갯짓은 팔랑인다기보다는 펄떡거림에 가까웠다. 좀 쉬었으면 좋으련만, 난간이나 창턱에조차 내려앉으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날개를 접어야 하는지 뭘 먹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는 것만 같았다. 나비가 맞긴 맞나, 차라리 불안의 감정이 형상을 이루어 움직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과 함께 ‘프쉬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비와 영혼을 동시에 뜻하는 그리스어. 옛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나비로 환생한 영혼이 지금 허둥대고 있는 걸까. 사람으로 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서? 울적한 연상이 ‘프쉬케’를 따라 또 한 번 진도 앞바다로 향한다. 한 달이 넘도록 물속에 잠겨 있는 17명에게로. 하필 검은 나비라서. 하필 안타까운 날갯짓이라서. 그런데도 하필, 이토록 볕이 쨍한 맑고 고요한 오후라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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