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해·공 통합 재난 컨트롤타워를 총리실 산하로
장관보다 위상 낮으면 실질적 컨트롤 안 될 수도
"독도 등 영토 방위·해양 경비 취약해져“ 우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골격을 밝힌 국가안전처(안전처)는 육ㆍ해ㆍ공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재난을 총리실에서 총괄 대처하도록 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 후 문제로 지적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부재와 부처간 불통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취지지만,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현장대응 능력 강화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전혀 쓸모 없는 조직개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관급도 아닌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라는 위상의 제약과, 지자체와의 유기적 협력 문제가 해결돼야만 몸통만 비대한 무용지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장대응 능력 강화 없인 무용지물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보인 정부의 대응을 보면 제대로 머리 역할을 하는 구심점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여기에 지휘와 현장 대처가 따로 놀아 난장판이 됐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육상 재난은 현장 소방본부와 지자체, 재난 소관부처가, ▦해상 재난은 신설되는 해양안전본부와 서해ㆍ남해ㆍ동해ㆍ제주의 4개 지역본부가 맡도록 하고 ▦항공 에너지 화학 통신인프라 등의 재난에 대해서도 특수재난본부를 만들어 대응하고 이를 안전처가 총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술로 무장된 특수기동구조대를 만들어 어디서 어떤 재난이 터져도 골든타임 내에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장 대응능력을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안전행정부를 총리실로 옮겨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자문위원인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결국은 230여개 기초 지자체의 재난대응 역량이 강화되지 않으면 중앙의 구조대가 현장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초반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된다”며 “안전처 내에 지자체의 현장대응 전문성을 강화하는 조직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구획의 범위를 좁혀 광역단체마다 거점 역할을 하는 재난안전센터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립방재연구소장을 지낸 이원호 광운대 교수(건축학)는 “안전처와 지자체 간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가칭 ‘지역협력관’을 두고 거점센터에 파견해 지자체 공무원 훈련 등 현장 대응능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통령은 공채로 안전처에 둘 전문가를 선발하고 순환보직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도 했다. 안전처에서 나아가 지자체에도 이런 현장 전문가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방재안전학회장인 이영재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위에서 기획을 하고 지휘하려면 제대로 손발 역할을 할 현장 조직이 중요하다”며 “지자체에 행정서열 중심이 아닌 기능중심의 구조전문가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관보다 낮은 안전처 위상이 문제
일부 전문가들이 안전처에 대해 “안행부보다 못할 수도 있다”고 혹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관급보다 낮은 위상 문제다. 박 대통령은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총리실 산하 처로 제한했다. 세월호 참사 대응에서 안행부 장관이 맡았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말이 안 먹혔는데 처장의 지휘권한이 보장되겠느냐는 것이다.
이원호 교수는 “총리실 산하보다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거나 처장의 위상을 부총리급으로 해야 한다”며 “그래야 안전처가 힘을 갖고 지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예를 들어 지방에서 건물 붕괴 사고가 나면 현장 대응은 지방자치단체, 건물 인ㆍ허가는 국토해양부 소관이니 ‘부’보다도 낮은 위상이라면 실질적인 컨트롤은 안된 채 옥상 옥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안전처 신설에 더해 청와대가 의사결정ㆍ조정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정부에서 국가위기관리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안전처가 재난 대비나 대처와 관련해 실질적인 ‘머리’ 역할까지 하기엔 불가능할 것”이라며 “여러 부처를 조율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컨트롤타워 역할은 결국 청와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해경 인력 쇄신해야
안전처가 만들어지면 해경은 수사기능을 경찰청에 넘기고 해양 경비ㆍ구조ㆍ구난은 안전처로 이관된다. 그러나 이관에만 그칠 게 아니라 인력 쇄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칫 해양경비 기능만 취약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보태고 있다.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해경 해체는 당연하다”면서도 “독도, 이어도 등 영토 방위를 하는 해양 경비를 안전처에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처장이 바다의 특수성을 알지 못하는 행정관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해양 경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처가 만들어져도 기존의 해경 인력이 대부분 옮겨갈 것이므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해난구조전문가인 진교중씨는 “현재의 해경은 구난ㆍ구조 분야를 홀대해 전문성이 낮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안전처도 1만1,000여명 해경인력 중 수사ㆍ정보 라인을 뺀 1만 명으로 조직만 바꾸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마스터플랜에 안전교육계획 등 담겨야
박 대통령은 안전처에 안전관련 예산 사전협의권과 재해예방에 관한 특별교부세 배부권한을 주고 신설 후엔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마스터플랜에는 민간의 재난안전 대비 훈련까지 포괄하는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재은 교수는 “초고층 빌딩부터 소규모 다중이용 시설까지 안전요원 배치, 위기관리 훈련을 의무화하고 이런 업무를 시장에 맡기는 ‘위기관리 재난안전 산업화 전략’이 필요하다”며 “위기관리 시장이 형성되면 재난대비 활성화뿐 아니라 고용창출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안전교육 의무화도 포함돼야 한다. 국가재난관리학회 수석부회장인 이명선 이화여대 교수(보건관리학)는 “사고의 원인은 십중팔구 인적 요인”이라며 “유치원부터 초ㆍ중등 교육기관에서 안전교육을 통해 비상상황에서 안전한 행동이 무엇인지 몸에 배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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