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적인 부분도 있지만 제게는 격조 있는 색(色)으로 느껴졌습니다.”
국립창극단이 처음으로 관람 연령을 성인으로 제한한 ‘18금’ 창극을 선보인다. 6월 11일~7월 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리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유실된 판소리 ‘변강쇠전’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창조한 창극이다. 하지만 이 공연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만 18세 이상’이라는 관람 권장연령 때문이 아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스타 연극 연출가 고선웅(46)씨가 쓰고 연출하는 첫 창극이다.
19일 열린 간담회에서 고씨는 공연을 “변강쇠, 옹녀 명예회복 프로젝트”로 칭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라는 제목도 무능한 방자가 아닌 생활력 강한 옹녀가 주인공임을 알리고 기존에 알려진 성적인 코드를 사랑 이야기로 발전시킨다는 의미다.
근대 판소리 이론가 신재효(1812~1884)가 정리한 판소리 여섯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전’은 상부살(喪夫煞)을 타고난 옹녀가 청석골에서 변강쇠를 만나 사랑하다가 장승동티로 남편을 잃는 이야기다. 남녀 간의 색정을 노골적으로 다루지만 작품의 본질은 정착을 염원하다 좌절하고 죽음을 맞는 유랑민(변강쇠)의 비극적 현실의 희극적 형상화다. 사당패, 풍각쟁이패, 초라니 등 유랑 예인의 놀이 모습을 통해 당대 하층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 주지만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한 ‘기물가’(己物歌) 때문에 외설적이라는 인상이 압도적이었다. 창극(‘가루지기’ 1979), 만화(‘가루지기전’ 1985), 영화(‘변강쇠’ 1986) 등 다양한 장르로 다뤄졌지만 음란물의 이미지가 강했다.
고씨는 국립창극단의 연출 제안을 받고 바로 이 ‘변강쇠전’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거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순수함이 사라진 혼탁하고 타락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본능조차 솔직히 드러내기보다 교묘하게 숨기죠. ‘기물가’가 야한 것 같지만 성을 과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밑천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옹녀의 사랑을 통해 이 시대의 말초적인 사랑과는 다른 인간애를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은 사라지고 사설만 문학으로 남은 미완의 ‘변강쇠전’을 고씨가 각색을 통해 완결했다면 소리의 날개를 더한 것은 작창을 맡은 한승석(46)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다.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자 중 한 사람으로 “창극과 판소리는 다르다”고 믿는 한 교수는 판소리와 더불어 전통 성악의 여러 장르를 버무려 넣었다. 민요와 정가, 가곡, 비나리는 물론 트로트까지 활용해 창극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2012년 말 공연된 ‘배비장전’과 올해 초 ‘숙영낭자전’에 이은 국립창극단의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 복원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한 작품을 3~5회 정도 공연했던 국립창극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26일간 23회 공연한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최근 기존 창극 애호가뿐 아니라 연극ㆍ뮤지컬 팬으로까지 관객층이 넓혀져 장기 공연을 시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옹녀 역은 국립창극단의 김지숙ㆍ이소연이, 변강쇠 역은 김학용ㆍ최호성이 번갈아 맡는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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