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상 이벤트 사업자였던 고 안현영(29)씨의 형 안현웅(31)씨는 침몰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현영이는 젊고 운동도 잘 하니까 걱정하지 말자”고 가족들을 다독였지만 ‘성격상 못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활달하고 의협심 강한 동생의 성격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세월호 침몰 20일째인 이달 5일, 249번째 시신으로 가족 품에 돌아온 동생은 선장조차 벗어버렸던 승무원 제복 차림이었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현영씨는 본인 방이 있는 5층이 아닌 3층에서 발견됐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난 뒤 10여일이 지나 가족들은 뒤늦게 현영씨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 현영씨와 가깝게 지내던 양대홍 세월호 사무장의 장례식장에서였다.
19일 현웅씨는 “구조된 한 승무원이 침몰 당시 배가 기울어지자 3층 로비에서 현영이가 승무원 박지영씨와 함께 의자와 테이블을 쌓아 올린 뒤 쓰러지지 않게 받치고 학생과 승객 여러 명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며 “생존 학생이나 승객들 중에서도 침몰 당시 동생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의사자(義死者) 신청을 할 계획이다.
그러나 모든 게 조심스럽다. 현영씨를 의사자로 지정하려는 가족들의 움직임이 다른 유가족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씨가 배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비겁한 승무원으로 매도 당할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컸다. 진도에 머무를 때도 다른 가족들이 물어보면 간단히 “일반 승객”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얼마 전에는 안산 합동분향소에 영정과 위패를 안치하려다 승무원 복장인 현영씨의 영정이 혹여 문제 될까 봐 다른 사진으로 교체했다. 현영씨는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1대1로 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일뿐 승무원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요청해 승무원 복장을 입고 근무했다.
현웅씨는 “동생과는 사춘기 지나고 군대 갔다 오고 커 가면서 서먹해졌지만 나중에 더 나이 들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처럼 함께 술도 마시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단단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영영 못 보게 됐다”며 “동생이 의사자로 인정돼 마지막 가는 길 명예를 지켜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산=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