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5일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허용을 공식화한 것은 전후 일본이 지켜온 평화헌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이날 아베가 제시한 사례만 놓고 보면 일본의 자위권 확대 실상이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1947년 현 헌법 제정 이후 9조에서 명기한 ‘전쟁포기’와 ‘전력보유 금지’의 원칙에 따라 70년 가까이 자국 방어가 아닌 이유로 무력행사를 허용한 적이 없다. 이번 집단적 자위권 허용이 일본 헌법의 근간을 흔들고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처럼 중대한 문제를 헌법개정이 아닌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편법으로 가능하게 하려는 행태에 일본 여론의 반발이 거세다.
“중국ㆍ북한 대응에 자위권 확대 필요”
아베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중국의 해양진출 확대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안보환경의 변화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이유로 들었다. 아시아지역 안보에 일본이 적극 참여해주기를 원하는 미국의 바람도 배경에 깔려 있다. 이 기회에 일본의 군사력을 대폭 확충,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것이 아베 정권의 생각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사적 자문기구인 ‘안전보장 법적 기반 재구축 간담회’(이하 간담회)가 보고서에서 주장한 새로운 헌법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고서는 “국권을 행사하는 정부의 헌법 해석이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위기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며 기존 헌법 해석을 공격했다. 새로운 헌법 해석이야말로 헌법의 이념을 지키는 것과 연결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하세베 야스오 와세다대 교수는 “입헌주의 원칙에 따라 정치를 펼치는 것이야 말로 일본을 지키는 일”이라며 “정부 스스로 그런 테두리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은 국가를 형성하는 헌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헌법 해석을 바꾸려 들면 안보를 명분으로 헌법을 뒤흔드는 것”(아사히신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헌법 파괴” 비판 쏟아져
절차상의 문제도 적지 않다. 아베는 당초 헌법 9조의 직접 개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지만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하자 헌법개정 가능 의원 정족수를 낮추는 헌법 96조 개정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자 사적인 보고서를 정부안으로 수용해 자신이 임명한 각료들의 동의만으로 마무리 짓는 이번 방식을 택한 것이다.
헌법 9조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학자조차 이를 “헌법 납치 선언” “헌법 파괴”라고 비판할 정도다. 보고서 작성 역시 “몇몇 아베 측근들이 주도한 것으로 나머지 위원들은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해외 참전 따라 가나
아베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더라도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일본처럼 ‘전수(專守)방위’를 이념으로 삼아온 독일이 논란 끝에 사실상 이 원칙을 포기하고 해외 파병에 나선 전례를 따라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독일 정부는 1990년대 캄보디아, 소말리아, 옛유고슬라비아 파병을 국회 승인을 얻어 실행했다. 파병 반대 여론도 거세 시비는 법정에까지 갔지만 결국 독일 법원은 국회 승인을 얻었기 때문에 헌법에 반한 것은 아니라고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독일은 9ㆍ11 이후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에까지 군대를 보냈다. 독일의 해외 파병도 처음은 일본이 이날 보고서 사례에 담은 ‘후방지원’이나 ‘부흥지원’이 주임무였다. 하지만 아프간에서는 전투에 참가해 전사자까지 나왔다.
연립여당 설득이 닥친 과제
아베는 이날 제시한 헌법 해석 변경을 당초 정기 국회가 끝나는 6월 22일 이전에 각의결정을 강행하기로 했지만 최근 한발 물러선 상태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은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개별적 자위권과 경찰권을 활용하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며 아베의 주장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공명당과 협의 시기를 가을 임시국회 이전까지 늦추는 등 현재는 배려하는 모양새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연립정당이 분열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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