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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박근혜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다

입력
2014.05.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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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장에 고개를 숙이면서 입장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장에 고개를 숙이면서 입장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기자질문 생략하고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낸 담화

여전한 친위ㆍ공안 인물 중용 통합 기대 어려워

[이충재 칼럼] 대다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달라지길 원한다. 물론 잘못된 제도와 정책은 고쳐야 한다. ‘관피아’는 사라져야 하고 공무원 조직은 개혁돼야 하고, 국가재난시스템도 다시 짜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안다. 큰 사고가 나면 온갖 대책을 내놓지만 그때뿐이라는 것을. 나라를 뒤집어 엎을 듯이 요란을 떨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원위치로 돌아간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터득했다. 세월호 침몰도 제도와 시스템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을 운용하는 관료들이 문제였다. 그들을 부리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철학이 더 큰 문제였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국민들의 시선이 쏠린 것도 이런 연유다. 어떤 내용과 대책을 내놓을지가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 회견의 형식과 박 대통령의 태도, 사과의 진정성에 더 주목했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이 진짜 달라질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 담화문 발표는 이전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24분 동안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은 없었다. 곤혹스러운 질문을 피하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유족과 국민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는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과 고통스러운 답변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고해성사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는 말은 한달 전에 나왔어야 했다. 애걸복걸해서 받아낸 사과가 네 번째든, 다섯 번째든 유족들의 마음은 이미 싸늘히 식어있다.

한꺼번에 수십 개가 쏟아져 나온 대책은 즉흥적이다. ‘국가개조’ 차원의 정책이라면 청와대가 밀실에서 얼렁뚱땅 만들어낼 게 아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전문가 등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충분한 시일을 두고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사안이다. 해경의 구조가 엉망이니 해경을 해체하고, 공무원이 엉터리니 채용방식을 바꾸면 된다는 식의 대책에서 졸속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안전 대한민국’이 손 쉽게 만들어진 대책 몇 개로 이뤄질 수 있다고 여기는 안이한 인식 자체가 진짜 문제다.

이쯤 되니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이 뭔지를 알고는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독주와 불통, 깨알 리더십, 만기친람식 국정운영, 내사람 심기 등이 결국 세월호 참사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나 담화문 어디에도 국정운영 방식의 반성과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은 없었다. 무능한 장관과 한심한 해경이 사고 수습을 엉망으로 해 자신을 욕보였다는 책임 전가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걱정이다. 행여 이제 내각을 좀 더 믿을만한 인물로 채우고 더 다그쳐야겠다고 마음먹지나 않을지. 그러면 세월호 이전의 지지율 70%를 단숨에 복원할 수 있을 거라고 오산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이 단행한 몇 차례 인사를 보면 단순히 기우가 아니라는 심증이 굳어진다. KBS사태를 계기로 방송의 공정성이 부각되는 마당에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자신의 대선캠프 출신 인사인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를 내정했다. 관피아의 악습을 척결한다면서 태연히 낙하산 인사를 하는 걸 보곤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검사를 앉히고 국가정보원 2차장에는 공안검사 출신을 임명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진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을 대거 선임했다. 국민의 통합 기대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은 간다는 오만함이 엿보인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청와대 회의에서 “너무 많은 유언비어와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퍼져 사회에 혼란을 일으킨다”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앞을 찾아온 유족들에게 “순수 유가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일부 세력이 주도한 ‘정치 선동’이라는 인식을 은연 중에 드러낸 셈이다. 그러니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정권 비판 글을 올린 교사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서고 세월호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무차별 연행하는 거다. 박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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