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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반정부 충돌하나... 태국 또다시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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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반정부 충돌하나... 태국 또다시 소용돌이

입력
2014.05.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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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잉락 친나왓의 총리직 상실로 태국 정국이 또 다시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전망이다. 잉락 총리가 실각되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약속한 친정부(친탁신) 진영과 이를 저지하려는 반정부(반탁신) 진영의 충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잉락 총리 재임 기간 반정부 진영의 대규모 시위에도 충돌을 자제해오던 친정부 진영이 잉락 총리의 실각 철회를 요구하며 본격 투쟁에 나설 경우 반정부 진영과 무력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탁신 찬반을 둘러싼 갈등

친정부 진영과 반정부 진영으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 양상을 보이는 현재 태국의 정치 및 계층 분열은 탁신 전 총리가 군 쿠데타로 쫓겨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탁신 총리는 2006년 9월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나라를 비운 사이 쿠데타를 맞았고 이후 망명 생활을 통해 끊임 없이 귀국의 기회를 엿봐왔다.

결국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으로 2008년 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아 귀국이 좌절된 탁신은 사업가이던 막내 여동생 잉락을 대신 내세웠다. 잉락은 지방 농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탁신의 후광을 업은 친탁신계 푸어타이당을 결성해 총선에서 압승, 2011년 7월 총리후보로 추대됐다. 당시 총선에서 푸어타이당은 전체 500석 가운데 265석을 얻었다.

그러나 잉락 총리는 집권 내내 탁신 전 총리의 꼭두각시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지난해 탁신 전 총리의 사면과 귀국이 가능한 포괄적 정치사면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반정부 시위라는 역풍을 맞았다. 결국 의회까지 해산하는 위기에 몰렸지만 2월 조기총선에서 승리하며 다시 한 번 권력기반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 선거를 보이콧한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인 대법원의 판결로 총선 결과 자체가 무효가 되면서 정국 불안이 이어져 왔다.

친ㆍ반정부 시위대 충돌 가능성

최근 일로만 따져도 6개월째, 탁신 실각 이후부터 계산하면 사실상 8년 가까이 이어지는 태국의 혼란스런 정국은 이날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또다시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방콕 셧다운’ 시위 참여자는 한때 15만명 규모에 이르렀다. 이 기간 동안 20여 명이 숨지고 700여 명이 다쳤다. 친정부 시위대와 반정부 시위대가 직접적인 충돌을 자제한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 인명피해에 머무른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공언한 대로 잉락의 총리직 상실 이후 친정부 시위대인‘레드셔츠’가 대대적인 시위에 나설 경우 반정부 시위대와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유혈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레드셔츠는 2010년 봄 당시 민주당 정권에 항의해 약 3개월 동안 방콕 시내 중심가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군과 경찰이 이를 진압하던 과정에서 90여명이 숨지고 1,700여명이 다쳤다.

이번 판결에 대한 친정부 진영의 불만은 예사롭지 않다. 서민 성향의 친정부 진영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합법을 가장한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현 정부가 민주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선출됐음에도 기득권층이 중심인 반정부 진영이 법률의 힘을 빌어 정부 전복에 나섰다는 것이다. 친정부 진영은 헌재에서 잉락 총리의 실각 판결이 나지 않았더라도 국가반부패위원회(NACC) 조사를 통해 총리를 탄핵할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잉락 총리는 쌀 수매 정책으로 인한 대규모 재정손실과 부정부패를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근 NACC의 조사를 받았다. 헌재의 결정이 없더라도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NACC가 상원에 탄핵을, 검찰에 기소를 각각 권고하면 잉락 총리의 업무는 즉각 정지될 형편이었다. 반정부 진영에 우호적인 헌법재판소, NACC 등 사법기관과 국가 독립기관들은 이전에도 총리 두 명을 물러나게 하고 총선에서 승리한 탁신계 집권 정당을 두 차례 해산한 적이 있다.

군부 또 쿠데타 나설 수도

정국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거나 장기화할 경우 군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도 점쳐 진다. 태국에서 군은 주요 정치세력 중 하나로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8차례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정치 판도를 좌지우지했다.

프라윳 찬 오차 태국 육군참모총장은 지난해 12월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군의 정쟁 개입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서 문(가능성)은 열려 있지 않지만 닫혀 있지도 않다”고 밝히며 쿠데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군은 이미 탁신을 몰아낸 적이 있으니 이 경우 상황은 반정부 진영에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하지만 쿠데타는 향후 시위대의 충돌로 인한 혼란이 어느 정도가 될지, 7월 이후로 예상되는 재선거가 어떻게 준비되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 등 여러 변수와 얽혀 있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서 친정부든 반정부든 시위대들이 또 정부청사나 공항을 점거하는 과격 시위를 벌이며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잉락은 누구인가

7일 태국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총리직을 상실한 잉락 친나왓(46)은 화교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 가족의 구 남매 중 막내다. 1988년 치앙마이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91년 미국 켄터키주립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이후 귀국해 탁신 전 총리가 이끌던 정보통신그룹의 계열사와 부동산 개발회사 사장을 지냈다.

군사쿠데타로 쫓겨난 탁신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정치에 나선 뒤에는 카리스마가 강한 탁신과는 다른 온화한 성품과 단정한 외모 등으로 이목을 끌어 왔다. 2011년 8월 취임 직후 반세기만의 최대 홍수가 발생해 위기에 처했으나 이듬해 6% 이상 경제성장을 달성하며 홍수 피해를 비교적 빠른 기간에 극복하는 등 비교적 성공적으로 총리직 수행을 시작했다.

지난해 초에는 전국적으로 1일 300바트(1만원) 최저임금제, 쌀 고가수매 등의 정책을 펴기도 했다. 쌀 수매는 수조원에 달하는 재정손실을 초래하면서도 농민 반발 때문에 수매가를 인하하지 못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시위와 정쟁을 종식시키지는 못했지만 취임 후 2년 반 동안 태국 사회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발목을 잡고 만 것은 오빠 ‘탁신’이었다. 지난해 말 탁신의 사면과 귀국으로 이어질 뻔했던 포괄적 정치사면 등 무리한 오빠 살리기에 나섰다가 결국 의회를 해산하는 등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이날 헌재 위헌 결정을 불러온 부당 인사도 국가안보위원장의 경질만 문제였던 게 아니다. 그 자리에 국가경찰본부 장관을 데려다 놓고 경찰본부 장관에는 친인척을 앉혔다.

잉락은 기업 임원인 아누손 아몬찻과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이며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한국에는 2012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와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다녀갔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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