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9시 9분. 태국 수도 방콕 중심 룸피니 공원에서 함성과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잉락 총리의 사임과 내각 총사퇴를 줄곧 요구해온 반정부 시위대 ‘옐로 셔츠’의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이날 옐로 셔츠는 지난 3월부터 점거 중이던 룸피니 공원을 출발해 총리실과 방송사 등을 목표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먼저 총리 공관과 방송사를 포위하고 있던 다른 시위대와 합류해 정부와 언론을 더욱 압박했다. 지난해 말 대규모 반정부 시위 시작 이후 총리실은 줄곧 총리 퇴진을 요구해온 옐로 셔츠에 포위돼 있었다. 잉락 전 총리는 경찰청 등 임시 거처에서 집무를 봤다.
잉락 총리가 드디어 해임됐는데도 정부를 향한 이들의 분노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옐로 셔츠가 목표로 하는 것은 정권 교체다. 옐로 셔츠 지도자 수텝 터억수반 전 부총리는 10일 룸피니 공원에서 “상원과 헌법재판소 등은 12일까지 새 총리 임명 절차 등을 논의해달라”며 “그렇지 않으면 반정부 시위대가 독자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태국 경찰은 결국 옐로 셔츠의 총리 공관과 방송사 불법 점거가 두려워 이날 밤 공관 내 의전행사용 건물인 산티 마이트리의 사용을 허가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옐로 셔츠는 산티 마이트리를 시위 지휘본부와 기자회견장으로 사용 중이다.
태국 헌법재판소의 잉락 친나왓 총리 해임에 항의하는 친정부 시위대 ‘레드 셔츠’도 잠자코 있지 않았다. 이들은 10일 방콕 서북부 외곽에서 대규모 시위를 갖고 잉락 총리 해임 후 지명된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총리 지지와 7월 20일 조기 총선 실시를 주장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재저항민주연합전선(UDD)이 주축인 레드 셔츠 수천명은 ‘우리는 투표한다’(WE VOTE)는 대형 카드섹션을 펼쳐 보였다. 짜뚜폰 쁘롬판 UDD 대표는 “선거를 실시하지 않은 채 총리를 임명하자는 옐로 셔츠 주장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그들 뜻에 따라 새 총리가 임명되면 내전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11월 이후로만 따져 열한 번째가 될 친ㆍ반정부 시위대의 정면충돌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9일 두 시위대는 불과 4, 5㎞ 떨어진 곳에서 흥분된 상태로 시위를 진행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양측의 무력 충돌은 국가반부패위원회(NACC)의 잉락 전 총리 직무유기 혐의 기소 결정 이후 진행될 상원의 탄핵 투표가 불을 당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투표에서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 탄핵안이 가결되면 잉락 전 총리는 5년간 정치활동이 금지된다. 상원 150명 의원 중 80명이 옐로 셔츠인 것으로 알려져 10명 정도만 더 이들의 편을 들면 탄핵은 성립된다.
태국 정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군부 실권자 프라윳 찬-오차 육군참모총장은 양측의 대립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10일 정치 위기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쿠데타는 정치 갈등을 끝낼 수 없고 많은 비난을 초래할 것”이라며 “갈등은 합법적인 틀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친ㆍ반정부 시위대끼리 폭력 충돌 우려가 커지자 군 쿠데타 설도 적지 않게 나돈다. 군이 나서서 시위로 계속되는 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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