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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의 개척자, 찰스 린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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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의 개척자, 찰스 린드버그

입력
2014.05.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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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 주일의 小史]

제137회 - 5월 셋째 주

미국 뉴욕에서 파리에 이르는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가 1927년 5월 21일 자신의 비행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뉴욕에서 파리에 이르는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가 1927년 5월 21일 자신의 비행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서양 위를 날기 시작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났건만 가도가도 끝없는 바다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조그만 비행기 안에는 라디오, 무전기는 고사하고 필수 생존장비인 조명탄과 낙하산마저 없는 상태였다. 연료 한 방울이라도 더 싣기 위해 최대한 무게를 줄여야만 했다.

이륙 33시간째, 멀리서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육지다!”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아름다운 에펠탑을 보며 조종석의 청년은 만세를 외쳤다. 졸음은 사라지고 가슴 벅찬 환희가 밀려왔다.

1927년 5월 21일 저녁, 프랑스 파리 루브르제 공항 활주로는 비행기의 안전을 유도하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자동차들이 전조등을 켠 채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저녁 10시, 대서양 건너 뉴욕에서 출발한 비행기 한 대가 창공을 뚫고 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고 조종석에서 내린 청년은 열광하는 환영 인파에 싸여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6,000 달러를 들여 자신이 손수 제작한 비행기가 그의 뒤편에서 힘든 소음을 내뱉고 있었다.

전날 오전 7시, 미국 뉴욕 루스벨트 비행장을 떠난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가 33시간 30분 동안 5,815km를 날아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 안착함으로써 대서양을 건너는 뉴욕-파리 논스톱 비행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주인공은 미국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를 운항하던 25세의 항공집배원 찰스 린드버그였다.

1902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그는 링컨 비행학교에 진학하며 하늘을 나는 꿈을 키웠고, 세인트루이스의 항공회사에서 조종사로 일하던 중 목숨을 걸만큼 짜릿한 도전에 접했다. 뉴욕의 호텔왕 레이먼드 오티그가 뉴욕-파리간 무착륙 비행 성공에 2만5,000 달러의 상금을 내걸은 것이다. 몇몇 베테랑들이 미션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날 린드버그가 성공하기까지 6명의 조종사가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목숨을 건 대서양 횡단비행 성공으로 그는 세계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스는 16개 면을 할애해 기사를 실었고 시사주간지 타임을 비롯한 모든 신문과 라디오가 온통 현대판 영웅 만들기에 앞장섰다.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린드버그는 백만장자 소설가 앤 모로와 결혼하며 행운의 나날을 이어갔지만 지나친 유명세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1932년, 두 살배기 그의 아들이 유괴범에게 납치된 것이다. 5만 달러를 내놓으며 유괴범과 협상했지만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자책하던 린드버그는 독일로 이주해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의 연예 스타처럼, 하루아침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환경운동가로 말년을 보내던 그는 1974년 8월, 72세를 일기로 하와이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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