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전통경제학의 기본 가정
인 인간의 합리성에 체계적 의문을 표했다. 그는 인간 인지능력의 한계에 비추어 완전한 합리성은 허상이며,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시간과 비용의 제약, 필요한 정보의 부족, 두뇌 능력의 한계 등이 구체적 이유다. 따라서 인간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최적해(Optimal Solution) 대신 만족해(Satisfacting Solution)를 찾아 거기 머문다.
▦ 제약된 것은 합리성만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의지력(Willpower)’, ‘인지력(Awareness)’, ‘이기심(Self-interest), 행동의지(Will to commit)’ ‘윤리성(Ethicality)’ 등 여러 가지 ‘제약된’ 인지능력의 요소를 찾아냈다. 인간의 행동이나 시장에서의 의사결정의 실상이 한결 뚜렷해졌다. 사람은 대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어림짐작(Heuristic)이 편한 반면 다양한 인지의 편향(Bias)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인지 편향의 한 예인 ‘사후 과잉확신 편향(Hindsight Bias)’은 사건의 결과를 알고 난 뒤에 “그럴 줄 알았다”고 마치 스스로가 사전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이미 결과가 드러난 상태에서 사건의 전개 과정을 거꾸로 더듬어 꿰어 맞추고는 처음부터 그렇게 사건이 진행될 줄 알았다는 식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사고 해역의 자연 조건에 미루어 구조ㆍ수색 작업 각각의 실패와 지연을 냉정하게 예측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 그런데도 배가 기울어 선실에 물이 차기 시작하고 승객의 탈출이 끊긴 때, 특히 배가 완전히 뒤집어진 뒤라면 크레인선을 활용해 완전침몰부터 막아야 했다는 등의 결과론이 잇따른다. 아예 폭발물로 선체 벽 일부러 날려버렸어야 한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사후 확신’인 데다 여론의 뭇매도 혼란을 부추겼다. 어제 대통령 담화가 여론 대응보다는 체계적 고민과 검토의 결과물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희생이 덜 억울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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