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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잇단 쓴맛… 유럽영화제 경쟁부문 '남의 잔치'로

입력
2014.05.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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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하순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은 한가로이 일몰을 맞이하고 있었다. 보타이와 드레스로 무장한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굳은 얼굴 위로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마치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처럼 그들은 속속 칸영화제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같은 건물에 위치한 프레스센터에도 긴장이 휘돌았다. 그 해 수상자와 수상작이 발표됐다. 멕시코 영화가 잇달아 호명되자 멕시코 기자들은 환호를 터트렸다. 황금종려상(대상)의 주인이 태국영화 ‘엉클 분미’로 발표되자 태국 기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시’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대했던 한국 기자들은 침묵에 빠졌다. 칸영화제 시상식은 올림픽 경기를 방불케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는 1932년 첫 막을 올린 베니스국제영화제다. 무솔리니가 체제 홍보를 위해 만든 영화제였다. 1946년 부랴부랴 칸이 영화제 개최에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영화산업과 관광산업을 부흥시키려는 프랑스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 1951년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출범했다. 냉전의 최전선이던 베를린에서 자유 진영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시작된 영화제였다. 동구 사회주의권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와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로 맞섰다.

유럽 이곳 저곳에서 영화제가 대거 생겨나며 혼선을 빗자 유럽 영화인들은 머리를 맞댔다. 영화제를 통합해 ‘영화 올림픽’을 만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한 도시에서만 지속적으로 개최할지, 개최지를 매번 바꿀지 등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다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영화제마다 추구하는 잇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유럽 영화제의 역사는 영화제가 경제적 정치적 이득에 얼마나 민감한지 잘 보여준다.

세계 유명 영화제는 종종 신작 전시장 역할을 한다. 특히 유럽 유명 영화제는 예술적 성향이 진한 감독들의 영화를 유럽 영화시장에 소개한다. 예술영화가 유럽에서 개봉할 때 칸영화제나 베를린ㆍ베니스 영화제 수상만큼 좋은 홍보 수단은 딱히 없다. 변방의 감독들은 유명 영화제의 부름을 받아 이름을 알리고 상으로 상품성을 얻는다. 유럽이 제3세계라 지칭하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중남미의 영화들은 영화제를 거쳐 유럽 판매망을 뚫는다. 제아무리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본 영화라도 유럽에선 제3세계 영화 또는 월드 시네마라는 명칭이 붙는다. 두 용어는 종종 유럽에서 예술영화와 동의어로 통한다. 한국영화산업이 성장해 매끈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도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운 주요 이유다.

영화제 중의 영화제라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명단에 한국 영화는 없다. 2년 연속 이어진 부재다.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감독의 신작이 물망에 올랐으나 호명되지 못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와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불발에서 한국영화 산업의 위기가 감지된다. 적어도 유럽 시장 개척에 빨간 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 데뷔한 한국 감독 중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간 이는 아무도 없다. 창의력 넘치는 감독이 충무로에 없거나 산업 논리에 짓눌려 감독이 자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예술영화는 대부분 저예산영화라는 수식이 붙곤 한다. ‘박쥐’나 ‘마더’처럼 40억원 정도 중급 제작비를 들인, 모양새가 그럴 듯한 예술성 강한 영화들은 이제 충무로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박찬욱 김지운 등 유명 감독들은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꺼린다는 풍문도 돈다. 요즘 한국영화가 유명 영화제 경쟁부문 문턱을 못 넘는 요인들일 것이다.

세계 3대 영화제가 별거냐고, 9명 남짓한 심사위원에 의한 수상 결과가 얼마나 공정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예술은 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의견이 엇갈릴 말들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유명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 무산될수록 한국영화의 세계 시장 진출도 험난해진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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