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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부른 비극… 이보다 더 정치적일 수 없다

입력
2014.05.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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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28일째인 13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 가족이 아들을 위해 갖다 놓은 운동화와 트레이닝 복, 간식거리가 놓여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로 시작하는 편지에 자식의 귀환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 있다.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28일째인 13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 가족이 아들을 위해 갖다 놓은 운동화와 트레이닝 복, 간식거리가 놓여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로 시작하는 편지에 자식의 귀환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 있다.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4년 10월, 성수대교가 무너져 32명이 죽었다.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당시 다리 북단 근처 한양대학교에 다니던 나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슬펐던 것은 등교를 하던 왕십리의 무학여고생들이 9명이나 죽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고 이후 대충 관계자 몇 명이 처벌받고 희생자들은 잊혀졌다. 엉뚱하게도 강북 학생들이 강남에 등교하는 것만이 금지되었을 뿐이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하듯, 정부가 생각해낸 유일한 대책은 학생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는 것이 위험하니 통학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는 다음 해인 1995년 6월 29일, 우리 동네의 삼풍백화점 붕괴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별로 갈 일이 없었으나 어머니는 종종 그곳을 이용했고, 사고 당일에조차 세일 중인 백화점 안에 들어가 옷을 사서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아찔했는데, 최근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어머니가 백화점이 무너지기 바로 직전 구입한 옷을 바꾸러 다시 가려던 참이었다는 것이다. 집을 나서려는 찰나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그제야 등골이 서늘했다고 한다.

거대한 불행의 송곳니가 우리 가족 바로 눈 앞까지 왔다 갔던 것이다. 어쩌면 나 또한 어머니의 생사를 찾아 그 여름을 온통 폐허 더미를 찾아 헤맬 뻔 했다. 한 번만 더 그리운 얼굴을 보길 하늘에 빌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실낱 같은 희망은 모든 참사들이 그렇듯 결국 절망으로 바뀔 것이고, 그 이후 내 인생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어쩌면 영화감독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사고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은 모두 끔찍한 사고에서 운 좋게 가까스로 살아남았기에, 남들이 우리 대신 가족을 잃는 참담한 고통을 겪었기에 이렇게 멀쩡히 생존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삼풍 사고의 인명피해는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였다. 이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삼풍그룹 회장 이준 등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되었다. 이준 회장과 아들 이한상 사장은 각각 7년의 징역형을 받았지만, 결국 뇌물을 먹고 부실시공을 눈감아 준 공무원들은 징역 10월이 최고였다. 언제나처럼 정부의 책임자들은 다 빠져나가고 깃털들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사고가 터지자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나는 학과에서 16㎜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 필름으로 붕괴 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담았고, 이를 토대로 단편 영화까지 찍었으나 무거운 책임감에 비해 작품 완성도는 신통찮았다.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소재로 ‘기념촬영’이란 재난영화(?)를 또 한번 찍었고 결국 이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하게 됐다. 이처럼 당시 20대의 나에게 대한민국의 어처구니없는 대형 인재들은 너무나 큰 트라우마가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끔찍한 희생들이 망각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이를 영화로 만들어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라도 사회에 ‘이야기’를 던지며 스스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세월호(世越號) 참사가 터졌다. 20대를 짓눌렀던 거대한 사고들 이후 20여 년의 세월(歲月)이 다시 어두운 심연 속으로 침몰하는 충격에 온통 휩싸였다. 끔찍한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소름 돋는 기분에 모든 사고는 정지되었다. 더 참담했던 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무책임해진 정부의 대처였다. 대통령은 상처받은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남 탓만 했다. 그리고 유언비어 단속을 지시하고 심지어 유족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정치적 선동을 꾸짖었다. 과거에는 없던 생경한 풍경이었다. 대체 20여 년의 세월 동안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IMF 사태)로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후, 신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이며 각고의 노력 끝에 재기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번 세월호 참사로 사회안전망이 부도를 내며 전세계인들의 눈 앞에서 다시 순식간에 침몰하고 말았다. 유족들은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수많은 국민들은 삶의 의미를 잃었다. 국가의 존재감과 공동체의 가치는 탁류 속에 실종되었고, 언제 인양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우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려웠던 IMF 시기에 태어나 제대로 입히고 먹이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대거 제물로 바쳐진 것은 뼈저린 시사점을 가져다 준다. IMF 사태를 빌미로 이 나라를 점령한 신자유주의는 불행히도 그 아이들을 안전하게 어른으로 길러 사회에 내보낼 능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한 학교 2학년의 80%가 사라진 것은 전쟁 중이라도 불가능할 초유의 비극이다. 21세기에 벌어진 백주대낮의 학살이라고 봐야 한다. 허나 살인자는 누구인가? 선장인가? 돈에 눈먼 회사인가? 절대 아니다. 5ㆍ18 광주민중항쟁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주범이 일개 공수부대원들이 아니듯 이 학살도 주범은 따로 있다. 그것을 명확히 찾아내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모든 생존자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무이다. 5ㆍ18이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정치적 학살’이라면 4ㆍ16(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은 IMF 사태 이후 대한민국을 점령한 신자유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경제적 학살'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애써왔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경제 정의의 중요성을 처참하게 보여주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돈과 자유를 얻었지만, 인간다움을 잃었을 때 그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흉기가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가슴 아팠던 1980년의 5ㆍ18 광주 학살이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초석이 되어 결국 대한민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가져왔다면, 이제 2014년 4ㆍ16 세월호의 학살은 우리의 영혼을 점령하고 있는 천민자본주의와 맞서 싸워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헌법에 보장된 생존의 권리를 쟁취하는 와신상담의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만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간 300여 영령들의 원한을 풀고, 그들이 짧게나마 이 저주받은 땅에 다녀간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5ㆍ18 진상 규명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광주는 학살자들이 명백했지만 이번 4ㆍ16의 원흉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더 깊숙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장관이 물러나고, 설사 대통령이 진정한 사과를 했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신자유주의의 막강한 독재는 이미 우리 삶 전체를 호령하고 있다. 비정규직, 민영화, 대학서열화, 작은 정부, 재벌친화정책 등등 이미 엄청난 무게로 대한민국호에 과적되어 선체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암덩어리라고 규정하며 적극 추진하는 각종 규제 완화로 인해 법이라는 평형수마저 점점 빠져나가고 있으며 진실을 말해야 할 언론은 배에 탄 국민들에게 “가만 있으라”고 앵무새처럼 외치고만 있다. 그 말대로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책하며 이른바 국가재난처를 새로 만들어 착실히 대비해 나간다면 과연 언젠가 좋은 세월이 올까?

신자유주의자들이 싫어하는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렇게 단언한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그렇다. 단기적으로 이것저것 땜질을 해 봤자 결국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건 결국 죽음뿐이다. 침몰한 세월호가 여실히 보여주듯 배는 스스로 파도를 넘을 수 없다. 안전과 생존에 대한 절박한 욕망만이 침몰을 막을 수 있는 것이며, 이보다 중요하고 정치적인 것은 없다. 우린 사고를 낸 후, 혼자 탈출하려는 학살자들을 반드시 처단하고, 진실된 사과를 받아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남아 다시 항해를 계속 할 수 있다.

영화 ‘대부’에서 배신자들에게 가족을 잃고 패밀리가 괴멸된 비토(말론 브란도)는 죽기 전 아들 마이클(알파치노)에게 “나의 장례식에서 너에게 다가와 적과 화해를 주선하는 자가 바로 배신자”라고 냉정한 유언을 남긴다. 이번 4ㆍ16 학살에서도 희생자들은 우리에게 준엄히 경고하고 있다. 분향소의 향냄새도 사라지기 전에, 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협박하면서 국가와 빠른 화해를 부추기는 자가 바로 학살자라고 말이다.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실종에 의해서 자행된 억울한 죽음들. 그것은 자본에 점령된 21세기 대한민국에 찾아올 새로운 비극의 서곡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이제 그 어떤 사건도 세월호 침몰보다 더 정치적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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