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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람들

입력
2014.05.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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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19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대통령의 눈물도 눈물이지만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는 사과 발언에 눈길이 갔다. 희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 이 한 마디 아니었을까. 참사 뒷날 진도체육관까지 내려간 박 대통령이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겠다”는 말 대신 책임을 통감하는 사과를 했다면, 유족들을 청와대로 불러 면담하는 자리에서도 “세월호 특별법과 특검이 필요하다”는 대책 대신 눈물로 호소했다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진정성은 국민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그 동안의 논란을 감안할 때 책임을 통감하는 사과는 만시지탄(晩時之歎)에 가깝다. 대통령이 참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과연 대통령 스스로 ‘내 탓’을 통감하기까지 이토록 시간이 걸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책임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들을 의심한다. 대통령이 ‘채 피지도 못한 많은 학생들과 눈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과연 그들이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했는지. 대통령이 초기에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고 최근 유족들을 만날 때 어떤 조언을 했길래 “흡족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참모들이 대통령의 귀와 눈을 가려 국정 책임자와 참사 희생자의 교감을 방해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운 것은 아닌지.

최근 속속 드러나는 참모들의 행적을 보면 의심에 그칠 정도가 아닐 성 싶다. 부적절한 언행으로 사퇴하는 자리에서 공영방송 보도국장이 청와대 핵심 참모인 이정현 홍보수석을 KBS 보도 통제의 장본인으로 지목한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시중의 여론은 이 수석을 넘어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겨냥하고 있다. 마침 야당이 이 수석과 함께 김 실장을 언론 통제의 핵심으로 판단하고 국회 출석을 요청하고 있다. 대통령 재가까지 떨어진 세월호 특검과 국정조사에서 청와대 참모진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는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어느 순간 대통령의 언어로 변한 ‘국가개조론’을 들고 나온 그들의 저의(底意)도 의심스럽다. 세월호 참사 1주일 째인 지난달 22일 청와대 참모는 “국가개조 수준으로 60년 적폐(積弊)를 척결하겠다. 도와달라”고 읍소했고 국가개조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과업이 됐다. 180여명의 실종자가 여전히 깊고 어두운 바다에 갇혀 있었고 전 국민이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라는 시기도 시기려니와 국가 폭력의 그림자마저 드리운 국가개조를 스스럼없이 꺼내 든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참모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18세기 계몽주의 전제군주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국가개조론은 박 대통령의 통치 이미지만 강화시키고 말았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의 국민적 분노가 대통령을 직접 향하고 있는 것도 억울해 하는 듯하다. “미국 9ㆍ11 테러와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국가 지도자를 향한 책임 추궁이 있었느냐. 대통령을 욕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는 청와대 주변의 불만은 일부 여론지도층에까지 번져 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일격을 당한 미국이나 대자연의 가공할 위력 앞에 무릎을 꿇은 일본의 경우와 달리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정부의 총체적 대응 실패에 있다는 사실조차 그들은 외면하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국정의 무한 책임자이며 참모들은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서 국정에 연대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 대통령은 길을 잃고 국정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워터게이트의 전모를 그린 영화와 책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에는 백악관 참모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위기로 몰아 넣는지가 잘 묘사돼 있다. 위중한 시기, 청와대 참모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정곤 정치부 차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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