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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탈출구… 단순해진 현관과 거실, 아이들 놀이터가 되다

입력
2014.05.1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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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현남매 하우스
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현남매 하우스

도시를 벗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출퇴근길의 교통 지옥, 지독한 매연, 층간 소음, 높은 물가. 아이를 가진 부부에게는 하나가 더 붙는다. 바로 사교육 열풍. 걸음마를 뗄 때부터 영어 방송이라도 틀어놔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은 어느덧 도시에 사는 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전염병이 됐다.

지난해 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한 전원주택 단지에 작은 2층집이 하나 들어섰다. 아직 마흔이 채 안 된 젊은 부부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유치원생 딸을 데리고 입주한 이 집의 이름은 '현남매 하우스'다. 아이들의 이름을 딴 현남매 하우스는 사교육 광풍에서 결연히 탈출을 결심한 4인 가족의 단란한 피난처다.

1억500만원에 4인 가족 집 짓기

의정부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던 D씨 부부가 귀촌을 결심한 것은 2012년이다. "도시에서는 학원을 안 다니면 아예 친구를 사귈 수 없잖아요. 어릴 때만이라도 자유롭게 뛰어 놀았으면 했어요."

도시를 떠나 자기 집을 짓는 이들의 평균 연령이 50대 전후임을 감안하면 부부의 나이는 한참 어렸다. 그러나 집 짓기의 가장 큰 목적이 아이들의 교육인 만큼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D씨가 김종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 해 말이다. 집을 지어달라며 조건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처음 김 대표의 머리를 스친 생각은 "과연 이게 가능할까"였다. "총예산이 1억500만원이었어요. 시공비뿐 아니라 설계, 형질변경, 지하수 확보, 세금 등 제반 사항을 포함한 금액이요."

부부가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김 대표를 찾은 이유는 몇 년 전 그가 경기 이천시 석산리에 지은 부래미하우스 때문이었다. 2000년대 중반 정부의 농촌 마을 조성 사업에 참여한 김 대표는 당시 마을 주민의 요청으로 1억2,000만원에 살림집과 게스트하우스가 세트를 이룬 멋진 집을 완성했다. 집은 방 한 칸에 부엌, 거실, 화장실만으로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하고 바로 옆에 붙은 게스트하우스는 집과 살짝 각도를 틀어 서로 완벽하게 사생활이 보장되도록 설계했다. 부래미하우스의 독특한 외관과 간결한 구성에 마음을 빼긴 D씨 부부는 "꼭 우리 집을 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처음에 망설이던 김 대표는 부부의 적극적인 모습에 점차 마음을 열었다. 농촌마을을 조성하면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통감해온 그로서는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정확히 지목해 당신이 설계한 집을 원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죠. D씨의 아내가 사무실에 올 때마다 정갈하게 구운 브라우니를 가지고 왔는데 그 브라우니에 마음이 녹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억500만원에 4인 가족 집 짓기'라는 어려운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 대표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첫째는 단순한 디자인, 둘째는 공사기간의 최소화다. "예산이 적을수록 시공이 편해야 합니다. 조형적으로 변화를 많이 주면 시공이 복잡해지고 그럴수록 비용은 올라가요. 나중에 비가 샌다든지 하는 식으로 탈이 생길 위험도 커지고요." 공사기간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경량 목구조가 채택됐다. 일반적으로 콘크리트를 이용한 집 짓기가 가장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 대표는 공사기간을 감안하면 목구조가 훨씬 낫다고 말한다. "저렴한 자재보다 더 중요한 게 공사기간을 줄이는 겁니다. 건축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인건비거든요. 콘크리트는 굳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길어지고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요. 반면 목구조는 나무와 망치, 못만 있으면 언제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죠."

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현남매 하우스 외관
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현남매 하우스 외관

현남매 하우스는 59.05㎡(17.89평) 규모의 네모 반듯한 2층 집으로 결정됐다. 1층은 거실 겸 주방, 2층은 부부의 방과 아이들의 각방으로 구성됐다. 건축가는 뻔한 집이 되지 않도록 예산이 늘지 않는 범위에서 이것저것 변화를 시도했다. 그 중 하나가 세로로 붙인 시멘트 사이딩이다. 사이딩은 목조 주택 겉면에 겹쳐 붙이는 긴 널빤지를 말한다. 김 대표는 목조보다 저렴한 시멘트 사이딩을 쓰되 가로가 아닌 세로로 세워서 붙였다. 이 때문에 살림집보다는 사무용 건물처럼 긴장된 느낌이 강해졌는데 여기에 검은 목재로 창문 주변을 둘러 장식적 효과를 줬다. 목재는 벽면에서 약간 튀어나와 있어 비가 올 때 창문을 빗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도 한다.

"작을수록 심리적 여유는 필수"

내부 공간 구성은 좁다는 느낌을 지우는 데 맞춰졌다. 건축가는 다용도실과 보일러실 같은 기능적 공간을 한쪽으로 몰아 넣어 탁 트인 느낌을 강조하고, 벽을 따라 서가를 조성해 수납 공간을 절약했다. 그리고 현관 앞에 약 13㎡(4평) 크기의 널찍한 진입 공간을 만들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면적을 양보해 굳이 진입 공간을 넓힌 것은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현남매 하우스 입구
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현남매 하우스 입구

김 대표는 "호텔 로비와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호텔에서 묵는 사람들에게 할당된 면적은 사실 매우 작아요.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맞닥뜨렸던 드넓은 로비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객실에 들어간 후에도 좁은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작은집일수록 심리적 풍요로움이 반드시 필요해요."

이곳은 가족 전원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 중이다. 낮에는 아이들이 튜브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고 저녁에는 부부가 시원한 밤 바람을 맞으며 술잔을 기울인다. 손님들이 놀러 올 때면 돗자리를 깔아 왁자한 자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전원으로 옮긴 이후 가족의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일단 거실에서 소파가 사라졌다. 소파를 놓을 공간이 부족한 데다가 습관처럼 소파에 늘어져 TV 앞에 고정되는 생활을 원치 않은 D씨가 소파 없이 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TV도 장롱 안에 넣어버렸다. 덕분에 거실에는 늘 산뜻한 긴장감이 감돈다. 요리뿐 아니라 바느질과 뜨개질에도 능한 아내는 실력을 십분 발휘해 거실을 카페처럼 꾸몄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씌운 둥근 커버와 작은 창문을 가린 하얀색 린넨 커튼은 모두 2층 작업실에서 직접 만든 것이다. 가장 신난 것은 역시 아이들이다. D씨는 "온 집 안을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분출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의 방에는 아직 책상조차 없다. 가까운 곳에 있는 초등학교는 마침 혁신 학교라 부부의 교육철학에도 딱 들어 맞는다.

만약 예산이 넉넉했더라면 집이 어떻게 달라졌을 것 같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미리 짠 듯이 "더 작고 높은 집이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면적을 더 늘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관리비만 늘어날 뿐이죠. 여기서 뭘 더할 수 있다면 3층에 아이들 다락방을 만들었을 거예요. 공간 구성만 잘하면 작은집이 훨씬 더 실용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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