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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리기의 생명력

입력
2014.05.1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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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체가 주최하는 청소년미술대회 심사를 갔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예선인데, 우편으로 접수되는 자유 주제의 작품을 심사하는 일이었다. 오랜 전통의 미술대회이지만 올해는 세월호 사건으로 홍보도 조심스러웠고 학교 차원에서도 호응이 적어서인지 예년에 비해 출품작이 많이 감소된 상황이었다.

나라가 힘들 때일수록 오히려 창작을 통해 아픔을 공유하고 슬픔을 극복해 가는 것이, 예술이 주는 사회적 치유임에도, 응모작이 줄어든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잠시 후 그런 서운함을 뒤로하고 심사장을 둘러봤다. 몇천 장의 그림들이 줄을 맞추어 정렬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좀 전의 근심도 사라졌다. 알록달록한 그림들 안에서 아이들의 꿈이 모락모락 일어나는 듯해 가슴도 콩콩 뛰었다.

먼저 초등학교 1학년 작품부터 심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내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아이들이 너무나도 잘 그렸기 때문이다. 이상한 마음에 가까이 들여다보니 부모나 학원 선생님의 터치로 보이는 가필이 너무나 많아 이번엔 안타까움이 번졌다. 아이가 그려놓은 날 것의 그림은 능숙한 어른의 손길로 인해, 정형화되고 순진함은 퇴색되어 버린 것이다.

가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동작업인 경우도 많았다. 아이의 발달 정도에 맞는 형태감, 표현력이 아니라 한 화면에 여러 연령대의 손길이 보이니 이것은 아이의 그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 스스로 그린 그림을 뽑으려니까 결과적으로 잘 그려 보이는 그림이 아니라 못 그려 보이는 그림이 뽑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기의 가장 중요한 창의성, 독자성을 잃는 그림이 평가에서 제외되는 것은 당연하다.

때로는 같은 미술학원의 그림처럼 주제나 표현 면에서 비슷하게 정형화된 그림들도 눈에 띠었다. 그런 작품들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친구들 사이에서 잘 그린다는 얘기는 못 들었을지라도, 용기를 갖고 꾸밈없이 즐겁고 순수하게 열정으로 그린 아이는 의외의 입상을 하게 되고, 그런 아이에게는 그림 그리기의 동기가 부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꼼꼼하게 칠하지 않아도, 주제를 크게 그리지 않아도, 때로는 배경을 칠하지 않아도, 윤곽선 밖으로 색이 삐져나와도 문제 될 것이 없다. 화면 전체에 아우르는 일관된 아이만의 색깔이 존재한다면 분명한 자기 열정이 솟구치고 있다면 그것이 그 아이의 아우라인 것이다. 그 아우라가 독창적인 자기의 주관을 표현하고 보는 이들을 예술적으로 매료시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변종하 화백을 떠올렸다. 그의 작품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생명력 넘치는 조형언어를 갖고 있다. 그는 생전에 예술을 잘 피어난 꽃과 탐스러운 열매에 비유하며 예술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흙에서 자란 것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흙이란 자연 상태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땅의 기운을 받아 자연적으로 발아하는 것이다. 이러한 흙에서 자라는 것들은 각기 다른 아름다운 생명력을 갖고 성장한다.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배운다. 더욱이 그림을 좋아하면 그림을 더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배우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다’는 ‘배다’ 즉 어머니가 배 속에 아이를 잉태하는 것과 같은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의 씨앗을 배는 것, 어머니의 몸에 들어온 생명이 잘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배우다’인 것이다.

배우는 것은 소중한 씨앗이 서로 다른 존재 가치를 갖고 잘 자라게 해주는 것이지 모두 똑같이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그림을 배우는 일은 남과 다른 자신이라는 씨앗을 잘 자라게 하는 일이다. 아이들의 그림에서 우리는 희망을 읽는다. 천편일률로 흐르지 않고 개성이 넘치는, 그렇게 잘 배운 아이들의 웃음이 꽃피는 그림에서 꿈과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 미술대회에는 아이들의 꽃밭을 어른이 방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스스로 그리기의 생명력을 꼭 지켜주길 바란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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