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각종 재난에 대비, 다양한 매뉴얼을 갖춘 일본을 철저히 분석하면 안전불감증에 걸린 한국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거치면서 일본은 안전대국이라는 자부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형식적인 매뉴얼에 쌓여 정작 중요한 안전 의식을 외면한 사례가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복기해보면 이런 결론은 더욱 명쾌해진다.
원전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은 예상하지 못한 규모의 지진에 따르면 쓰나미로 인한 천재였다고 강변했다. 이와는 달리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은 입지부터 잘못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다. 당초 원전부지는 해안에서 20m 이상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도쿄전력 간부는 바다에서 접안이 쉬워야 경비를 줄일 수 있다며 10m 이상 지반을 낮추도록 지시했다. 당초 부지에 원전시설이 들어섰다면 사고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쓰나미로 원전을 가동하는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됐다. 수많은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은 전원공급시설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도쿄전력 고위 간부들은 “가능성이 낮은 쓰나미보다는 경비절감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묵살했다.
도쿄전력 간부들은 원전안전에 써야 할 경비를 빼돌려 정치권에 막대한 뇌물을 안겼고, 정치권은 짭짤한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도쿄전력 간부들을 낙하산 인사라는 은혜를 베풀며 공생 공존관계를 유지했다. 경제 논리를 내세워 원전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내 일부 장관들은 지금까지도 도쿄전력을 비롯한 전력회사로부터 적지 않은 정치자금을 제공받는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일부 원전 시설에서는 테러에 대비한 각종 안전관련 훈련을 한답시고 직원들이 한 데 모여 정해진 매뉴얼을 독서하듯 쭉 읽어 내려간 것으로 훈련을 마쳤다고 허위보고를 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허울뿐인 매뉴얼사회의 허상이 깨지면서 일본의 안전신화도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일본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일본의 주요 신문이 한국관련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다룬 것은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보도 이후 처음이다.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지속적인 속보가 나오고 있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두고 일본내에서는 한일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것을 계기로, 한국의 후진국형 사고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우익 인사들은 선실에 갇혀있는 학생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구조되는 선장을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일본의 흐트러진 안전의식에 다시 고삐를 죄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일본인 지인은 “세월호 사고 관련자가 그렇게 빨리 사법 처리되는 것도 놀랍거니와 어처구니 없는 사고에 많은 국민들이 함께 화를 내는 모습도 충격”이라고 전했다. 재앙에 가까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해도 화를 내지 않는 국민, 사고발생 3년이 넘도록 관련자 단 한명도 사법처리 되지 않는 사법부의 행태가 지속된다면 제2, 제3의 원전사고가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통해 일본 사회가 안전불감증을 치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는 지인의 말이 보다 설득력있게 들렸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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