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9일 진모(49)씨는 남편을 살해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폭력에 우울증까지 앓던 아내는 그렇게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법원은 그러나 정당방위 대신 살인죄를 적용했다. 범행에 이르기 전 이혼이나 경찰 신고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등에 따르면 진씨는 결혼 직후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남편은 걸핏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목공소의 기물을 부수고 진씨를 때렸다. 사건 발생 사흘 전 남편은 자신 몰래 진씨가 집 전세를 월세로 바꿔 보증금 일부를 빼 두 딸의 학원비와 생활비로 썼다는 이유로 목공소로 끌고 가 진씨의 목을 노끈으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졸랐다.
결혼기간 내내 이어진 폭력을 견디다 못한 진씨는 수 차례 경찰서와 법원 민원실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하거나 이혼 소송을 제기하지는 못했다. 남편이 “나를 떠나면 너를 청부살인하고 친정 식구들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협박해온 데다 딸들도 화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진씨는 사건 당일 목공소에서 나무를 다듬고 있는 남편 뒤로 다가가 자신의 목을 졸랐던 노끈으로 남편의 목을 졸랐다. 당시 진씨는 우울증 등에 의해 사물 변별력과 의사 결정능력이 약해진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진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남편에게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을 당해왔고 이런 상태가 계속될 염려가 있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13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 이효두)는 진씨에게 살인죄를 적용,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정당방위의 요건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해도 가장 존엄한 ‘인간의 생명’이라는 법익을 침해한 것보다 우선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진씨가 범행 후 수사기관에 자수한 점, 자녀가 선처를 호소하는 점, 범행을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현행 형법상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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