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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주세요, 우리 친구들을... 어른들이 만든 비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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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주세요, 우리 친구들을... 어른들이 만든 비극을"

입력
2014.05.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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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안산 지역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안산 지역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교복 차림에 가방을 멘 고등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예전 같으면 서로 얼굴만 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을 아이들은 입을 앙다문 채 시선을 발 아래 뒀다. 파릇한 웃음 대신 노란 리본을 왼쪽 손목에 묶은 아이들이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었다. 저마다 손에 든 종이에 적힌 글귀처럼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간절한 외침을.

9일 오후 6시30분 세월호 침몰 참사 정부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침묵 행진은 3㎞ 가량 떨어진 고잔동 문화광장(구 25시광장)까지 이어졌다. 안산시 24개 고교 회장단 모임인 안산고교회장단연합(Chairman Of AnsanㆍCOA)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ㆍ실종된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연 행사다. 피해 학생들의 또래 친구들이 추모 행사를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OA는 안산시 소재 고교 학생회장ㆍ부회장 등이 정보 교류를 위해 만든 단체로 올해로 4년째 운영되고 있다.

경안고 우숭민(18)군은 “안산지역 학생들이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이자 곧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인 이번 사건을 같이 기억하고 가슴 깊이 애도하자는 의미에서 마련한 첫 집회”라면서 “아무 말 없이 걸으면서 보고 싶은 친구들을 잊지 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원했다”고 말했다.

1시간여 동안의 침묵 속 ‘동행’ 행진을 마친 학생들은 문화광장에서 2부 행사인 ‘외침’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200여명으로 시작한 침묵의 행렬은 문화광장에 도착할 무렵 주변의 어른들까지 동참하면서 1,500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손에 촛불을 하나씩 챙겨 들고 광장에 모여 앉은 아이들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자유 발언과 노란 리본을 형상화한 카드섹션이 진행되면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 대응에 대한 질타를 쏟아냈다.

“어른들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다.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숨기기에만 급급했나. 우리는 우왕좌왕한 해경,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부, 그런 정부의 말만 그대로 보도한 언론에 분노한다. 더 이상 언론과 정부, 이 사회를 믿지 않는다.”

촛불을 든 아이들은 “또 다시 모든 국민이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참담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글에 담아 낭독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에 젖은 마음도 달래주는 성숙함도 잊지 않았다. 친구를 잃은 애통함과 어른들의 잘못에 분노한 학생들의 촛불문화제는 오후 9시까지 이어졌다.

안산시민들은 학생들의 뜻을 이어 10일 오후 1,000여명이 노란색 리본을 두르고 합동분향소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는 ‘인간띠 잇기’ 행사를 연다. ‘세월호 침몰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안산시민사회연대’가 마련한 이 행사에서는 희생 학생들이 이승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펼치도록 노란색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내고, 조속한 실종자 수색 작업과 사고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침묵 행진을 할 예정이다.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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