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격렬한 연극이다. “하녀란 게 얼마나 개 같은 건지 알아야 한단 말야. 난 그 여자의 목을 조르고 싶었…(후략).”마담에 대해 퍼붓는 이 정도 악담은 약과다. “ 달빛을 받으며 조각조각 토막을 내는 거야. 그리고 노래를 해야지.” 그러나 두 하녀는 밤마다 그 같은 놀이극을 하고는 다시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 앞에 체념할 수밖에 없다.
장 주네의 ‘하녀들’이 극단 푸른달의 무대로 다시 왔다. 극단으로서는 지난 2008년 초연(初演)한 이래 종종 상연돼 온 레퍼토리지만 이번에는 뜻이 좀 다르다. 비록 임대한 것이긴 하지만 그들의 소극장, 예술정원에서 처음으로 올리는 작품이다. 암흑을 주조로 섬광처럼 번득이는 잔혹한 이미지들이 연속되는 가운데 이 극단은 장 주네의 격렬한 원작을 실험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인간의 의식을 상징하는 네 개의 큰 문틀을 배우들이 기민하고도 정확하게 움직여 가며 연출해 내는 시각적 효과는 이들이 암전 속에서 분투했을 시간의 두께를 족히 짐작하게 했다.
“네 개의 문틀은 ‘상대를 보는 눈’이란 의미를 띠는 것으로 초연인 2008년부터 등장시켜왔죠.” 각색ㆍ연출자 박진신씨는 그것이 곧 역할 바꾸기를 시각적으로 상징한다고도 했다. 늘 그래왔듯 이 무대 역시 새로운 출발을 내장하고 있다. 박씨는 “국악기를 사용한 반주는 물론 판소리를 원용하는 등 향후 한국화를 위해 변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같은 형식적 변화에 소외, 억압, 차별 등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꾸준히 포섭해 나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전히 실험에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이 극장에서 만난 홍춘미(71)씨는 이 시대가 잊고 있던 가치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연극이란)체력 있을 때 봐 두는 거다.” 64학번인 그는 문사철, 데칸쇼(데카트르, 칸트, 쇼펜하우어)와 체 게바라를 말하고 있었다. 베케트, 오태석을 말하더니 “주네는 그 시대의 진실을 경계 밖에서 보여준 사람”이라며 얼치기의 야코를 팍 죽여놓았다. 연극이 인문학의 정점으로 오르는 순간이었다. 6월 1일까지 예술정원 푸른달 극장
장병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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