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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의 기억이 부끄러운 이유

입력
2014.05.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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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은 여체를 가장 먼저 목격한 공간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여탕’이었을 것이다. 분명 삼십 년도 훨씬 지난 옛날의 일이지만, 기억은 생생하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공기 때문에 몇 초도 버티지 못했던 사우나, 다닥다닥 붙어 앉아 열심히 때를 밀어대던 동네 아주머니들, 그리고 무엇보다 낯뜨거웠던 또래 여자아이들의 등장을 지금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북적거리고 부끄러운 이미지만 앞설 뿐, 아무리 기억을 깊이 파고 들어가도 여체의 모습을 그려내지 못했던 것은 분명 남녀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겪은 경험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당시엔 지금처럼 여탕을 출입할 수 있는 남자아이에 대한 규제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목욕료를 받던 주인 아주머니의, 온전히 주관적인 판단 아래 가끔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장성한 녀석도 ‘운이 좋으면(?)’ 금남의 공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래서 목욕탕이 붐비는 일요일을 지내고 난 월요일 아침 교실에선 막 머리에 피가 마르기 시작한 사내 녀석들의 여탕 체험기가 사우나 열기만큼이나 뜨겁게 피어오르곤 했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졸업한 남자들에겐 대체로 이와 비슷한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솟는 의문은 ‘과연 우리가 여탕을 오가던 시절, 아버지들은 어디에 있었을까?’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샤워를 밥 먹듯이 하던 때도 아니고, 목욕탕을 무슨 휴게실처럼 드나들던 시절도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동네 여탕은 사내 녀석들로 매일 붐벼야 했는지 모를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까마귀’소리는 면했을 것인데, 우리의 아버지들은 왜 다 큰 녀석들을 여탕으로 보내야 했는지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당시 아버지들은 목욕탕은커녕, 그 어떤 공간도 자식들과 함께 나눌 여유를 갖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이면 되는데, 생계를 붙들어야 하는 아버지들은 그 하루를 빼지 못해 아들을 여탕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목욕을 포함해 육아의 몫은 살림을 하던 어머니들에게 온전히 놓여있던 1980년대 이전의 풍경이다. 단단한 아버지의 손목에 붙들려 남탕을 다니면서 세상은 조금씩 가장들에게 여유를 허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목욕탕 주인 아주머니가 여탕 앞에서 사내 녀석들을 골라내는 눈초리가 날카로워지면서 어머니들의 육아 부담은 아주 조금씩 아버지들에게 넘어갔을 지 모른다.

여탕 출입을 성적인 판타지로 상상하는 사춘기를 보내고,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여탕을 수십 년 동안 ‘합법적으로’ 드나들던 아내를 만났고, 나는 드디어 아들과 목욕탕을 함께 갈 수 있는 아버지라는 자격을 얻었다. 아들이 세 살 무렵, 그럭저럭 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어느 날, 아들의 남탕 입성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비누와 물, 딱딱한 바닥으로 덮인 목욕탕이란 공간은 녀석에게 너무나 위험한 놀이터였다. 탁 트인 공간에서 놀아주는 게 전부였던 의욕뿐인 아빠에게 목욕탕은 두려운 곳이었다. 비누칠을 하고 씻기는 둥 마는 둥 하니 사우나에라도 들어온 듯 땀이 났다. 꼭 때를 밀고 잘 씻겨서 나오라던 아내의 당부는 잊혀졌고, 부랴부랴 남탕을 벗어나기 바빴다.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혼성지대인 찜질방을 통해 아이를 넘겨받고 여탕으로 향했다. 수십 년 전 내 아버지처럼, 나는 속절없이 아들을 여탕으로 돌려 보낸 것이다. 아들은 그러고도 몇 년 동안 여탕을 더 출입해야 했다. 여탕 출입 남아 규제가 허락하는 한, 육아에 서툰 아빠가 의지할 곳은 엄마가 들어가는 여탕이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휴일을 내주지 않는 직장에 봉사해야 할 상황이 아닌데도, 아들과의 목욕탕 출입을 버거워했던 것이다.

얼마 전 한국목욕업중앙회가 여탕에 들어갈 수 있는 남자아이의 연령 기준(현행 만5세)을 낮춰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육아에 서툰 것을 창피하지 않게 생각했던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어쩌면 나처럼 아들의 남탕 출입을 유예했던 아빠들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아서다. 여탕의 기억이 아직 부끄러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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