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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미학이 만나면

입력
2014.05.1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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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전 총리는 24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용을 중시하는 대통령과 미학에 휩쓸리기 쉬운 총리 사이의 궁합이 걱정”이라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전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두고 한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흔히 미국적 가치를 기반에 둔 실용주의자로 분류된다.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킨 것은 승산 없는 전쟁에서 발을 빼겠다는 실용주의 원칙에 입각한 대표적 사례다. 대외문제에 목소리를 키우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내문제에 치중한다는 평가도 오바마식 실용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미학을 풀어 말하면 형식에 치우친 보여 주기식 정치를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해 12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전격 참배한 것은 형식주의를 강조하는 아베식 미학의 극단이다. 한일간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기미는 없으면서도 지난 달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서 서투른 한국말로 “박근혜 대통령님을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것도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는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두 정상이 24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 극단주의가 충돌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당초 24,25일 1박2일 일정으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을 어떻게든 국빈초청행사로 격상시키기 위해 갖은 로비활동을 펼쳤다는 후문이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23일 저녁에 도착, 2박3일 일정으로 국빈방문을 성사시켰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도착시간이 늦은 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두 정상의 만찬조차 성사되기 불투명한 실정이다.

아베 총리가 형식을 싫어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시켜 무리한 국빈초청을 강행한 것은 보여주기 정치의 전형이라는 평가다.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이 국빈자격일 경우 일왕 예방 및 만찬이 필수적이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실망’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불쾌감을 표시했던 미국 대통령을 일왕과 마주 서게 해 보수세력들에게 미일동맹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센카쿠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림수도 숨어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둘러싼 일련의 행보를 통해 아베 총리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듯하다. 반면 미국의 가장 큰 국내문제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둘러싼 일본과의 교섭에서 적지 않은 실리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극도로 경색된 한일관계 해소를 위해 지난 달 헤이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3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 아베 총리와 별도의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방일의 성공 여부는 TPP협상 내용에 달려있다며 아베 총리를 압박했다. 한미일 정상회담 성사, 2박3일 국빈방문 등 아베 총리가 원하는 사항들을 들어줬으니 이번에는 일본측이 TPP협상안을 양보할 차례라는 암시였다.

아베 총리는 귀국후 TPP협상에서 소ㆍ돼지고기, 쌀 등 농축산물 관세철폐 재검토를 지시했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지나친 형식을 강조한 나머지 오바마 대통령에게 많은 빚을 지게 됐고, 24일 미일정상회담서 TPP관련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외교전에서는 미학이 실용을 이기기 어렵다는 노다 전 총리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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