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열흘째다. 거리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만 봐도 울컥하고 미안해진다. TV 켤 때마다 나오는 그 검은 바다, 기울어진 세월호의 모습, 고통스럽고 무섭다.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돌이킬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복잡한 줄거리는 잘 모르겠다. 딸의 죽음에 괴로워하던 엄마에게 ‘신의 선물’처럼 14일의 시간이 주어지고, 과거로 돌아간 엄마가 딸을 되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 정도로 기억한다.
만약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마음이 급해진다. 우선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파렴치한 선장 대신 책임감과 판단력을 가진 선장에게 배를 맡겨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고 원인이 맹골수로 구간의 미숙한 항해 외에 선박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면 선장 바꾸는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세월호를 타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도 떠오르지만 5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을 하나하나 막는 건 불가능하다. 아예 배의 출항을 막아야겠는데 짙은 안개에도 1억원 가량의 수입을 위해 배를 띄운 청해진해운의 탐욕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회사는 일본에서 배를 들여오면서 승객을 더 많이 태우기 위해 객실 2개층을 증축했고, 알짜 요금을 받는 화물을 기준보다 3배 이상 실었다.
화물 과적이라도 막아야겠지만 출항 전 안전점검을 하는 한국해운조합은 선사들의 이익단체다. 주요 자리에는 해양수산부 출신 관료들이 앉아 있다. 안전점검은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정부의 관리 감독 기능을 무력화하는 ‘낙하산’ 인사를 뜯어고쳐야겠으나 역대 모든 정부가 어떤 비판에도 꿈쩍 않던 고질병이니 손대기 조차 막막하다.
불행의 씨앗을 들여오지 않는 방법도 있겠다. 2009년 이전까지 국내 여객선은 기본 20년에 철저한 안전점검 후 최대 5년을 더 쓸 수 있었다. 세월호가 일본에서 18년 사용됐으니 최대 7년을 더 쓰겠다고 116억원에 배를 사와 3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하는 건 청해진해운 입장에선 남는 장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세월호는 여객선의 사용연한이 30년으로 늘어난 2012년 수입됐다. 규정대로라면 앞으로 10년을 더 다닐 수 있는 셈이다.
결국 규제 완화 차원에서 선령을 30년으로 늘린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을 막아야 하는데, 대놓고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시절이라 이 또한 쉽지 않겠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규제 완화 광풍이 불었던 게 엊그제였으니 과거 일이라 탓할 수만도 없겠다.
아무리 신이 긴 시간을 준대도 할 일이 너무 많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 지, 바로잡을 수나 있을 지 막막하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큰 배가 외부 충격 없이 침몰하는 게 과연 가능하냐’란 의문은 사라졌다. 대신 ‘이 부실투성이 배가 그동안 어떻게 바다를 다녔을까’란 의문이 남는다.
사고 이후 정부 움직임을 보면 크게 예상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 우왕좌왕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부적절한 처신을 한 몇몇 공무원이 ‘본보기’로 옷을 벗고, 기다렸다는 듯 안전점검이 유행처럼 실시되며, 새로운 대책과 조직의 필요성이 논의된다. 관련 예산은 늘어날 것이고, 각종 재난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질 것이다. 예전 신문을 들춰보니 1993년 서해훼리호 참사, 가까이는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때도 비슷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시간은 미래의 또 다른 사고와 억울한 죽음을 막으라는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버리고 고쳐야 할 게 많다. 사람의 안전보다 돈이 우선인 탐욕, 관행이라며 지켜지 않았던 규정과 지침, 이상징후가 보여도 흘려 넘긴 안전불감증, 뿌리깊은 ‘낙하산 인사’의 검은 유착, 시간이 지나면 책상 속에 처박히는 대책과 매뉴얼….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의미 없다. 우리 모두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친 사고를 막기 위해 과거로 온 사람들처럼 악착같고, 필사적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 지금 이 순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