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인 2002년에는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다. 거리로 쏟아진 젊은이들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열기를 뿜어냈다. 직업, 학력, 출신지 따위의 세속적 기준을 초월해 이들은 축구로 하나가 됐다. 그 중심에 붉은 악마라는 응원단이 있었고 거리의 젊은이들 역시 자연스럽게 붉어졌다. 사회문제를 눈 여겨보는 평론가들이 이 현상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그 하나가 붉은 색 금기의 해제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짓누른 레드 콤플렉스가 월드컵을 통해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젊은이의 역동성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주눅든 것으로 여겨진 젊은이들이 계기만 주어지면 뜨거운 열기를 분출하는 역동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 때 고종석은 의문을 제기했다. “수백만의 인파는 유사 이래 한반도에서 터져 나온 최대의 열정을 증명하지만, 이 파천황의 열정은 과연 제대로 소비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열정이라는 것도 무한한 재화는 아닐 것”이라며 “이 제한된 재화의 소비에 적절한 오리엔테이션을 주는 것은 열정의 생산 못지 않게 긴요할 것”이라고 했다.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열정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 문장을 읽었다. 그러면서 고종석은 피가 아니라 장미에서 빨간색의 아름다움을 느낄 날을 희망한다는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연설을 소개하고, 청소부의 애환을 그린 영화 ‘빵과 장미’에서 장미가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나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삶을 상징한다고 쓴 뒤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거리의 청소부들을 포함해 모든 아웃사이더들에게 건넬 장미를 마련하기 위해 지금 이 붉은 색 정열을 조금 여투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지식인이 한국 사회의 붉은 열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고종석은 그 열기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 글이 어디에 처음 실렸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 해 10월 출간된 자유의 무늬의 맨 앞 부분에서 읽었다. 자유의 무늬는 그때 고종석의 또 다른 책 서얼단상과 함께 출판사 개마고원이 출간했다. 당시 저자는 한국일보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두 권의 책 역시 한국일보 등 언론에 기고한 글과, 처음 발표한 글을 모아 편의상 나눠 낸 것이다.
그때 출판을 담당하던 나는 책을 받아 들고 약간의 고민을 했다. 이 정도 책이면 저자를 인터뷰해야 할 터인데 같은 신문사에 근무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게 조금은 낯간지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한국 사회의 중요 논객 중 한 명이었고 책의 주제 역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그를 인터뷰하고 지면에 실었다.
자유의 무늬와 서얼단상은 신문 등에 실은 짧은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글 하나 하나는 읽기도 쉽고 주제도 분명했다. 하지만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저자에게 직접 묻고 싶었다. 그는 소수자의 옹호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개인주의와 자유를 강조했다. 그는 개인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것, 또 집단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 대답에 나는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결국 집단의 힘”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개인주의의 문제점을 은근히 꼬집으려 했던 것 같다. 고종석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뒤 나는 그 발언을 크게 후회했다. 개인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진지한 고민 없이 내뱉은 말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고종석과 대화한 뒤 개인주의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석의 문장은 정확하면서도 유려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나도 글 좀 잘 써보겠다며 책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따라 쓰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열등감만 깊어졌다. 글 재주도 중요하지만 인문적 지식과 사유가 그만큼 많고 깊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두 권의 책이 고종석의 대표작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도 그와 대화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자유의 무늬와 서얼단상을 통해 소수자 옹호와 개인주의에 대한 저자의 신념을 보았다. 그 뒤 그가 노무현 정부에 보인 태도 등에서 큰 아쉬움을 느꼈으나 이들 책은 그것과 별개라고 여겼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손에 들고 거듭해서 읽었다. 박광희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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