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은평구 갈현동 역촌중앙시장에는 조그마한 선원(禪院)이 자리잡고 있다. 선원장인 한국불교 태고종 법현(57) 스님이 2005년 6월부터 허름한 전통시장 상가 2층 일부를 세내 열린선원을 열고 10년째 수행과 전법을 하는 곳이다. “저잣거리에서 하루하루 근근덕신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언제 깊은 산중에 들어갈 수 있겠으며, 또 집중 수련을 얼마나 해야 열반을 체험하고 견성해서 성불하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법현 스님이 최근 산문집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프로방스 발행)을 냈다. 책 제목은 스님이 평소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시구에서 따왔다. 스님이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 신흠(1566~1628)의 7언 절구 가운데 기개가 가장 높다고 여기는 구절이다.
책에는 저잣거리 포교를 하면서 부닥치고 풀어냈던 갈등과 깨달음이 오롯이 녹아 있다. “시골집 사랑방에서 초저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를 듣는 것 같다”는 금둔사 석지허 스님의 서평이 무색하지 않는 내용이다.
7일 열린선원에서 만난 법현 스님은 “수행은 조용한 곳에서 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며 “수행은 조용한 곳에서 주로 하더라도 복잡한 저자에서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10년 전 허름한 상가에 열린선원을 냈을 때 많은 사람이 ‘서울 강남의 번듯한 건물에 깃발을 꽂아도 될까 말까 한데 뭐가 모자라 이런 곳에 터를 잡았느냐’고 걱정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수행도, 전법도 저잣거리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져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불교 수행 단계를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것이 심우도 10단계인데 그 중 마지막 단계가 장터에 들어가 가르침을 전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라며 저잣거리 수행 및 포교의 의미를 설명했다.
스님은 “숨 쉬는 데에도 3,000가지의 품위가 들어 있다”며 “모두 스스로 언제나 마음 조심, 몸 조심의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욕탕에서 만난 구두닦이 아저씨와의 대화를 소개했다.
“스님도 목욕을 하시나요.” “스님이라고 몸에 때가 안 끼겠습니까.”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면 때가 낄 틈이 없는 것 아닙니까.”
스님은 “크게 한방 얻어맞았지만, 하던 일 그대로 밀고 나가는 심정으로 때를 벗기고 나왔다”고 했다. 스님이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구두닦이 아저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스님 다음부터는 여기 오지 마시고 마음공부를 쉬지 않고 하세요.” 스님은 “‘네’라고 대답했다”며 “세상 곳곳에 선지식(善知識)이 있다”고 했다.
스님은 ‘쉬운 불교, 바른 불교, 밝은 불교, 함께 웃는 불교’를 추구한다. 올해 초에는 불교의식에서 독송하는 한문 경전인 법요집을 주문(진언)만 빼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이해 한글법요집을 출간했다. 불교 경전, 선사 어록 외에 문학, 철학, 심지어 대중가요까지 법문 소재로 동원한다. 올해 신년 법회 때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으로 법문을 했다. 스님은 “변화한다는 사실, 무상의 법칙을 아주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시”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재미있고 쉽고 친근하게 전해야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새겨서 삶의 지혜가 된다”고 했다.
스님은 종교간 대화와 사회운동에서도 불교계를 대표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진행하는 이웃종교스테이(개신교ㆍ가톨릭ㆍ불교ㆍ원불교 등을 직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가 그의 기획으로 탄생했다. 크리스마스에는 법당에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건다. “각 종교가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마음을 열고 배우고자 한다면 모든 종교인의 삶이 그만큼 넓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뜻에서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열린선원 법당에는 인명진 갈보리교회 목사가 보낸 축하 화분이 놓여 있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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