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하는 정책금융 상품들
집주인이 세입자 위해 대출받는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1 달랑 2건
1년넘은 월세대출도 15건 그쳐 재형저축은 해지 많아 퇴출 수순
금융사에 자율성 높여 줘야
시장 고려 않고 정책에 맞춰 급조, 재정부담 줄이려 금융사는 들러리, 개발부터 참여시켜 완성도 높여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후속조치로 지난달 출시한 5ㆍ7년 만기 분할상환형 주택담보대출(적격대출)이 천덕꾸러기 신세다. 출시 한 달이 지났지만 판매가 20건에 그칠 정도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것.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 정책에 맞춰 고안된 탓이다. 적격대출뿐만 아니라 최근 금융권에서 내놓은 정책상품마다 시장에서 퇴짜를 맞고 있어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ㆍ7년 만기 적격대출이 지난달 3일 9개 시중은행(국민 신한 우리 농협 기업 부산 대구 광주 SC)을 통해 판매가 시작됐지만 현재까지 성사된 계약은 20건(16억원)에 불과하다. 주택대출이 통상 상담 후 1개월이 지나야 계약이 실행된다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초라한 성적이다. 이 상품은 은행권 주택대출 중 고정금리 비중(현재 15.9%)을 2017년까지 40%로 높이기 위한 정부의 3개년 계획에 맞춰 출시됐다.
하지만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대출상품에서 소비자가 가장 중요시 하는 금리가 은행의 비슷한 상품보다 많게는 1%포인트 정도 높은 연 4.2~4.3%대여서 경쟁력이 없다. 변동금리의 기준으로 이용되는 코픽스는 2010년 2월 도입 이래 사상 최저치를 매달 경신(4월 신규 취급액 기준 2.59%)하고 있어 나날이 적격대출 금리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를 변동금리 상품보다 30%가까이 더 내야 하기 때문에 대출 희망자에게 적격대출 상품을 권유하기 어렵다”며 “아무리 고정금리 상품이라고 해도 금리가 이렇게 높으면 누가 선택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상품을 설계한 주택금융공사는 서둘러 시중은행들의 적격대출 판매수수료를 줄여 금리를 낮추려고 금융당국과 논의 중이지만 은행권에서는 부정적이다. 시장 상황을 무시하고 상품을 급조해놓고, 그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해당 은행들은 “현재도 적격대출 판매 수익이 높지 않은데 이를 더 낮추라고 하면 사실상 판매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장의 외면을 받는 관치상품은 적격대출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출시한 ‘목돈안드는전세대출1’의 실적도 처참하다. 4월말 현재 단 2건(8,000만원)만 판매됐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위해 대출을 받아주는 상품 한계 때문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전세 수요가 적었던 90년대 논문을 바탕으로 만든 상품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또 다른 관치상품인 월세대출 역시 출시한 지 1년이 넘었지만 15건(1억7,000만원)만 판매됐다.
금융당국이 서민들의 재산형성에 도움을 주겠다며 18년 만에 부활시킨 재형저축도 실패 사례로 꼽힌다. 출시 석달 만인 지난해 9월 173만9,815계좌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달려 3월말 현재 160만7,178계좌에 불과한 상태다. 가입보다 해지가 더 많아 이미 퇴출에 들어갔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세제혜택을 보려면 7년간 자금을 묶어둬야만 하는데도, 금리는 일반 시중은행의 3년 만기 적금과 비슷해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품들은 모두 정부가 정책을 제시하면서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금융회사를 끌어들인 것이라, 대부분 실속 없게 고안된다. 재형저축의 경우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가계부채와 서민 노후대책으로 과거 재형저축제도 부활을 요구해 한 달 만에 졸속으로 만들어졌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무리 공적인 역할을 하는 상품이라고 해도 소비자에게 외면 받으면 출시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정책 상품이라도 좀더 금융기관에게 상품개발 단계부터 자율성을 부여해 완성도 높은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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