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식탁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ㆍ권지현 옮김
판미동 발행ㆍ640쪽ㆍ2만8,000원
‘환경운동의 어머니’ 레이첼 카슨은 1962년 침묵의 봄을 출간했다. DDT 등 살충제가 초래한 치명적인 결과를 비판한 이 책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비견될 정도로 전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또 환경운동의 흐름을,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로서 시혜를 베풀 듯 다른 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존주의에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환경주의로 바꾸었다. 그 책 침묵의 봄이 나온 지 50여년. 그러나 죽음의 식탁을 읽으면 “살충제가 우리의 생명을 파괴하는 살생제”라는 카슨의 테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죽음의 식탁은 밭에서 쓰는 농약에서부터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제와 플라스틱 용기까지 일상에 만연한 독성화학물질이 우리의 건강과 생존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추적해 밝힌 책이다. 전작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유명세를 탄 저자는 프랑스의 언론인으로 지난 수십 년간 암, 백혈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자가면역질환 등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이 의문을 풀려고 프랑스, 독일, 미국, 인도, 칠레 등 10개국에서 과학자, 활동가, 규제기관 대표 등 50여명과 인터뷰했다. 2년에 걸친 방대한 조사와 끈질긴 추적 끝에 일상을 점령한 수만 개의 화학물질이 그들 질병의 주요 원인임을 밝힌다. 또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일용할 독’으로 바꾼 대기업과 과학자, 규제기관의 기만과 속임수도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먼저 농작물 재배에 쓰는 농약에 주목했다. 기업이 ‘식물 약제’라는 이름으로 ‘생명체를 죽이기 위해 개발된 제품’을 ‘식물의 건강과 식품의 질을 보호하는 약’으로 둔갑시켜 농부와 소비자를 기만한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기업이 자사 제품을 옹호하고 이익을 대변해 줄 연구자들을 암암리에 돈을 주고 고용해 연구 결과를 조작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리처드 돌과 페토의 ‘1981년 발암 원인에 관한 연구’다. 이 연구는 담배를 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해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대대적인 금연 캠페인을 주도하는 공을 세웠다. 하지만 훗날 이 연구의 방법론적 오류가 밝혀졌고 연구를 집행한 리처드 돌이 화학업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비난을 받았다. 오늘날까지도 담배 악영향 연구가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 증가를 가리는 위장막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화학물질 유해성 기준이 되는 일일섭취허용량과 잔류농약최대허용량의 개념은 기업과 규제기관이 합작해 멋대로 정한 속임수”라고 주장한다. 소비자가 병에 걸리지 않고 매일 섭취할 수 있는 독극물의 최대량을 정한 일일섭취허용량은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기준이다. 잔류농약최대허용량 또한 그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기업의 영업기밀로 분류돼 확인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도 보건당국과 규제기관들은 이 개념을 관행적으로 받아들여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기만적인 연구와 허술한 관리 체계로 인해 아스파르탐, 비스페놀A 등과 같은 독성화학물질들이 우리의 식탁 위로 버젓이 올라와 우리는 매일매일 독을 먹고 있다”고 말한다. 아스파르탐은 설탕보다 200배 높은 단맛을 내는 까닭에 ‘코카콜라 제로’ 등 음료수, 시리얼, 껌, 술 등 6,000개의 식품과 300개 이상의 의약품에 첨가제로 쓰이고 있다. 뇌 속 화학작용을 바꿔 뇌종양, 간질 등을 일으킨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제조 기업과 결탁한 규제기관들의 묵인 속에서 사용이 승인돼 현재 전 세계에서 2억명이 섭취하고 있다. 불임을 일으키고 태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비스페놀A는 플라스틱 용기, CD, 젖병, 음료수캔 등에 쓰이고 있다. 이 물질은 음식물과 접촉하면 그 안으로 침투하는 성질을 갖고 있고 내분비계를 교란해 정자 수를 감소시키거나 유방암을 일으킨다. 극소량으로도 아주 위험해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 현행 일일섭취허용량 제도로는 통제가 어렵다. 이밖에 내분비계교란물질인 폴리염화바이페닐(PCB),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발암 메커니즘을 유발하는 제초제 아트라진 등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독성화학물질을 피하려면 가능한 한 유기농 식품을 먹으라”는 저자는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것이 기업과 규제기관의 논리이기에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질병을 양산하는 독성화학물질이 우리 일상에 넘쳐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지금 환경 악화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에 만연한 독성화학물질을 소상히 밝힐 뿐 아니라 그 시스템을 둘러싼 음모를 추리 소설처럼 파헤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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