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로부터 “세월호는 최대적재량 1,070톤으로 운항 승인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 혼란에 빠졌다. 사고 당일인 같은 달 16일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은 “사고 당시 세월호의 총 화물중량은 3,600톤”이라고 발표했기에 승인적재량의 3배를 적재하고도 과연 배가 운항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한 전문가는 “3배나 과적하는 상황을 가정해본 적이 없어서 운항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설사 운항할 수 있더라도 침몰 위험성이 높은데 100억원이 넘는 자기 재산(배)을 그런 손실 위험 속으로 내몰 선주가 있겠느냐”며 “어떤 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의 말이 설득력 있다고 판단해 일단 기사화를 유보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이틀 간의 추가 취재를 거쳐 기사화했다.
20일의 기사유보가 잘못된 결정이었음은 나중에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전문가조차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책임하고 몰상식적인 선주가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선주의 존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윤추구에 나서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자유 시장’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안전’은 시장이 실패하는 대표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전 규정을 어긴다고 늘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반면 그런 위반으로 인한 이득은 매번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세월호는 지난해 3월 도입 이후 총 241회 인천~제주 항로를 오갔으며, 그 중 139차례 과적 운항을 했다. 과적을 통해 사고 당일 6,200만원을 포함, 총 30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렸다. 한번 과적할 때마다 수천 만원의 추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눈이 멀어 1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구입한 여객선뿐 아니라 수백 명의 생명까지도 위험 속으로 내몬 것이다. 게다가 청해진해운은 배가 시시각각 기울어가는 순간에도 선박 보험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화물적재량을 줄이는 서류 조작에 몰두하느라 승객 대피를 모른 척하는 이윤 추구의 ‘막장’을 보여줬다.
시장이 실패하는 곳에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특히 세월호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간 구분을 명확히 하고, 이들이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이후 국가가 맡아야 할 안전 환경 보건 등에 ‘국가경쟁력 강화’ ‘예산절감’이란 명분을 앞세워 시장적 요소를 무원칙적으로 뒤섞는 것을 ‘개혁’이라고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선박회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국가 대신 여객선 안전관리를 감독해 온 것도 그 예다. 여객선 구조안전 등을 점검해 운항 허가를 내주는 한국선급도 “국내 선박구조 검증 기술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수십 년간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 왔다. 자칫 대형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폐수처리를 비롯해 제품ㆍ놀이시설, 전산망 등의 안전관리 역시 당사자인 기업이 만든 협회나 단체에 맡겨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단체에는 대부분 감독기관의 퇴직 관료가 임원직을 차지하고 앉아 정부의 감시ㆍ감독 기능을 무디게 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관피아’는 바로 이 같은 국가와 시장 간의 불륜적인 관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곧 관피아 대책을 발표할 모양이다. 이번 대책은 ‘퇴직 관료 재취업 금지 조항 강화’정도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재취업 금지의 벽을 얼마나 높게 쌓던 관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회 통로를 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관료가 퇴직 후 공직에서 쌓은 경륜을 기업에서 발휘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공직을 통해 얻은 지식과 판단력을 활용하는 것은 허용하되, 인맥을 동원해 부당하고 음성적으로 정부의 감시ㆍ감독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 받을 경우 대가성이 없어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받은 돈의 최대 5배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김영란법’의 통과는 국가와 시장 간 만남의 원칙을 세우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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