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업민원 해결해주다 '안전벨트' 풀려

입력
2014.05.19 13:56
0 0
규제 공백이 낳은 참사
규제 공백이 낳은 참사

“기업 경쟁력 강화와 국민불편 해소를 위해 각종 규제 대폭 완화”

정부가 진단한 참사의 원인이다. 1999년 유치원생 등 23명의 인명을 앗아간 ‘씨랜드 화재 참사’에 대해 안전행정부(당시 행정자치부)가 만든 ‘재난관리행정 개선대책 보고’의 결론이다. 구체적으로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소방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건축 인ㆍ허가 때 소방시설이 표시된 세부 설계도는 제출하지 않아도 됐다. 이 때문에 신속한 화재진압이 불가능했다.

업계 이익만 대변한 규제 완화

역대 정부는 규제를 경제 활성화의 걸림돌로 여겼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봇대 뽑기’니 ‘손톱 밑 가시’라며 앞다퉈 규제를 철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IMF의 요구로 규제 완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집권 초기인 1998년 1만185건이었던 규제는 임기 말 7,724건으로 24% 줄었다. 기업에 우호적인 규제를 대폭 풀어준 것은 이명박 정부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를 부른 선박의 수명 연장(20년에서 30년으로) 등 안전 규제도 뒤섞여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암덩어리’로 지목하며 남은 임기 3년간 규제의 20%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마저 함께 휩쓸려 간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 폐지된 재해영향평가 제도가 그렇다. 재해영향평가는 사업주가 대규모 개발사업에 앞서 일어날 수 있는 재해문제를 미리 찾아 대책을 세우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비용 절감, 절차 간소화 요구에 못 이겨 2009년 1월 결국 없어졌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저지대가 많아 침수에 취약한데 이 제도가 폐지돼 현재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개발사업을 승인할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과 협의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규제정보포털을 보면 박근혜 정부도 출범 이후 이미 11건의 크고 작은 안전규제를 완화, 시행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내항 화물선박 선장이 안전 부적합 사항을 선사에 보고하도록 한 선박안전법 시행규칙을 폐지했다. 또 국제안전관리 규정(ISM코드)을 차용해 실시했던 내부심사도 면제해줬다.

해양수산부는 “대신 선사의 안전관리자나 안전관리책임자가 매달 자율 점검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어서 완화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는 “영세한 선사들의 형편을 감안해 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현 한국해양대 마린시뮬레이션센터 팀장은 “비용이 드는 일이라 대규모 선사는 안전관리책임자를 이사급 이상으로 두지만 소규모 선사는 전문성이나 경륜,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안전 규제는 별도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안전 규제를 비용으로만 보는 시각으로는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가위기관리학회장을 지낸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한번의 사고가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와 경제 손실을 낳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전 관련 규제를 지출이 아닌 투자로 보고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을 간과했다가 치르는 대가는, 인명 손실은 차치하더라도 막대하다.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3월 세월호 운항을 시작한 후 과적으로 30억원을 남겼지만 약 150억원을 주고 수입?증축한 배를 바다에 가라앉히고 수천억원에 달하는 인양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처지다.

즉 안전 규제만큼은 어떤 정부에서도 불가침 영역으로 삼는다는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안전우선원칙을 보장하려면 독립기구에서 모든 규제가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방재연구실장은 “각 부처에서 규제 완화 여부를 판단하면 이익집단의 시각이 반영되기 쉽고 한 규제에 대해 부처마다 이견을 갖게 마련”이라며 “독립된 전문기관에서 규제가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 관리하고 안전규제는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재안전학회장인 이영재 동국대 교수(경영정보학)는 “인ㆍ허가권과 안전점검 의무를 분리할 것이 아니라 한 조직에 둬야 안전 규제 완화 여부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며 “현재처럼 이원화 돼있어선 안전 규제까지 풀리는 데도 모르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익집단이 규제완화 압력을 넣기 어렵도록 관료와의 결탁관계를 해체하는 것도 핵심이다. 이재은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규제를 당하는 이익집단, 기업 등에 관료 출신이 옮겨가 그들의 이익 보전을 위해 거꾸로 규제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규제의 포획’이 반복돼왔다”고 지적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