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치고는 이례적으로 낮 기온이 20도 가까이 오른 포근한 날이었다. 공원과 선착장 등으로 야외 활동에 나선 이들이 부쩍 많았지만 뮤지컬 ‘프리실라’가 공연 중인 예타 레욘 극장의 객석(1,100석)은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1920년대에 영화관으로 문을 연 스웨덴 스톡홀름의 예타 레욘 극장은 개ㆍ보수를 거쳐 1990년대부터 이 도시의 대표적 뮤지컬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9월 개막한 ‘프리실라’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양한 관객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예타 레욘 극장에서 관람한 ‘프리실라’는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의상과 원작 영화의 탄탄한 구성에 기반한 따스한 이야기가 돋보였다. 스웨덴과 한국 공연 모두 라이선스 제작 방식이어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할 한국 공연과 일치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7월 8일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되는 ‘프리실라’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호주 원작으로 2006년 시드니에서 초연된 ‘프리실라’는 동명의 영화(1994)를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스웨덴뿐 아니라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등 뮤지컬의 본고장을 비롯해 캐나다, 브라질, 이탈리아 등에서 공연됐으며 필리핀, 스페인 공연도 예정돼 있다. 호주 뮤지컬로는 기록적인 성과다.
영화를 충실히 옮긴 줄거리는 2명의 드랙 퀸(화려한 여성 복장을 하고 춤과 노래, 립싱크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남성)과 1명의 성전환 여성이 프리실라라는 이름의 낡은 버스를 타고 시드니에서 앨리스 스프링까지 사막을 횡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행의 명분은 공연의 초청을 받은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주인공이 수년 만에 아들과 재회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주요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 속에 가족애와 우정을 느낄 수 있다. 공연 전 기자들과 만난 오리지널 호주 제작팀 프로듀서 개리 매퀸이 “단순한 여행이 아닌 내면으로의 여행을 담았다”고 소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화려한 볼거리를 더했다. 길이 10m, 무게 8.5톤에 발광다이오드(LED)조명 수천 개로 장식한 버스 프리실라를 회전무대에 세웠고 500여벌의 의상, 200여개의 머리 장식을 제작했다. 원작 영화의 의상을 담당한 의상 디자이너들은 호주의 주요 공연 시상식은 물론 미국의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등에서도 의상 디자인상을 받았다.
마돈나, 신디 로퍼, 티나 터너, 도나 서머 등의 1970~1980년대 디스코 음악 중 25개 히트곡을 골라 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으로 꾸민 것도 흥행 비결이다. ‘잇츠 레이닝 맨’,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 ‘아이 세이 어 리틀 프레이어’ 등 친숙한 곡이 초반부터 이어져 금세 극에 집중할 수 있다.
볼거리와 가족애의 주제 등 한국 관객이 선호할 만한 요소가 많다.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따르는 단순한 구성은 흥행 변수다. 극의 잔재미가 상당 부분 배우 역량에 의존하고 있어 캐스팅에 따라서도 공연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2012년 동성애를 소재로 한 대극장 뮤지컬 ‘라카지’가 흥행하긴 했지만 아직은 보수적인 한국 관객이 드랙 퀸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스톡홀름=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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