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복우산 대둔사 주지 진오(眞悟ㆍ51) 스님은 ‘달리는 스님’이다. 절 대신 길 위를, 목탁 대신 운동화를 택한 채 매년 5, 6회 마라톤을 완주하고 있다.
3년 전인 2011년 4월 23일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뇌의 3분의 1을 잃은 베트남 청년 토안을 도우려고 처음 108㎞ 울트라 마라톤에 나섰다. 머리 한쪽을 잘라낼 정도의 큰 사고를 당하고서도 합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다니던 직장마저 잃은 토안이 너무 안타까워서였다. 16시간 45분 만에 완주했는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토안을 위한 후원금이 750만원 넘게 모였다. 이렇게 시작한 마라톤이 진오 스님의 삶을 바꿔 놓았다.
베트남에서 시골 초등학교에 화장실 108개를 지어주려고 500㎞를, 독일에서 파독 광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700㎞를,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당한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1,000㎞를….스님은 달리고 또 달렸다. 지난달 19일에는 ‘아이들아 미안하다’고 쓴 띠를 가사 위에 달고 108㎞ 울트라 마라톤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 세월호 참사로 스러진 꽃다운 학생들에게 어른의 잘못을 참회하는 뜻에서다. 지금까지 모두 8,000㎞를 뛰었다.
진오 스님이 최근 자신의 달리는 사연을 담은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리더스북 발행)을 냈다. ‘보살행’을 하겠다는 결기가 책 제목에서 느껴진다. 17일 오후 2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공연장에서 출간 기념 북콘서트도 한다.
“왜 달리느냐”는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진오 스님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길 위를 달리면서 후원단체로부터 ㎞당 100원씩 후원금을 받는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세상의 온정이 그만큼 쌓인다. 그렇게 모은 후원금으로 탈북 청소년 장학금, 이주 노동자 병원비, 이주민 모자가정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스님에게 달리기는 일종의 화두요, 수행인 셈이다.
하지만 스님이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았다. ‘스님이 왜 가사를 벗고 저리 속살을 드러내놓고 뛰는지 모르겠다’ ‘마라톤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데 차라리 절간에 앉아서 수행을 해라’는 등등.
진오 스님은 “스님은 산에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며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수행자에게, 있어야 할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이 신이요, 부처라고 생각하면 만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며 “성인들은 절이나 교회에서만 부처와 예수를 찾지 말고 내 삶의 주변에서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도우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산 속에서 염불이나 외워서는 중생을 구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런데 길 위에서 ‘수행’하는 스님의 절은 문제가 없을까. “그래서 우리 절에 부주지를 넷이나 뒀지요. 주지는 절에 오는 사람을 상담하고 기도해주고 문화재를 지켜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까. 저를 도와 절을 지키는 개 4마리가 부주지가 됐지요. 다 유기견이에요.”
“언제까지 달리겠느냐”고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낯선 남의 나라에 빈 몸으로 와서 냉대 속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나는 달리는 것을 선택했고 죽지 않을 만큼 뛰었습니다. 그들을 돕는 방법 중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뛰는 것이었고 사실 제가 가진 것도 몸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당 100원씩 모아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 2세, 탈북 청소년들을 돕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온 이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어요.” 바람을 가르며 세계를 향해 달리고 달리는 진오 스님의 두 발에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다문화 가족의 희망이 걸려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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