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관련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퇴한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이 사의 표명 과정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고 16일 폭로했다. KBS의 세월호 참사 보도에도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김 전 국장은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긴급 기자총회에서 “지난 9일 기자회견을 35분 앞두고 길환영 사장이 ‘BH(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길 사장이)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했고,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며 눈물까지 흘리면서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정부에서는 해경을 비판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했다”며 “한참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해경 비판을 나중에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고 밝혔다. 뉴스 전반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 지시 여부에 대해서는 “청와대로부터 전화는 받았다”면서 “정치 부분은 통계만 봐도 금방 아는데 대통령 비판은 (보도국장 재임 1년 5개월간)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의 이 같은 발언으로 청와대가 KBS의 인사권과 뉴스 보도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날 KBS에서는 보도본부 부장들이 전원 보직 사퇴하며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보도본부 부장들은 부장단 일동 명의로 발표한 ‘최근 KBS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 “20년 이상을 뉴스 현장에서 보낸 우리는 지금 보람이자 긍지여야 할 KBS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면서 “일선 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뉴스의 최전선을 지켜온 우리 부장들부터 책임지겠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또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정권과 적극적으로 유착해 KBS 저널리즘을 망친 사람이 어떻게 KBS 사장으로 있겠단 말인가”라며 길 사장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부장들이 보직 사퇴 의사를 밝히자 임창건 보도본부장도 사표를 제출했다. 길 사장은 임 본부장의 사표를 바로 수리했으나 자신은 사퇴를 거부했다.
보도본부 부장들은 최근의 KBS 사태와 관련, 총사퇴를 논의해오다 이날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KBS는 보도국장과 취재주간 등으로 뉴스를 만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도본부 부장들이 총사퇴를 하자 김주언, 이규환, 조준상, 최영묵 등 KBS 이사회 야당추천 이사들도 성명서를 통해 “길 사장은 국민 앞에 백배사죄하고 즉각 사퇴하라”며 “자리 보전을 시도한다면 KBS 이사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무에 따라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의 한 관계자는 “야당추천 이사들이 21일 이사회를 앞두고 길 사장 사퇴 권고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사회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사장 퇴임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회복하려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언론노조 등은 세월호 유가족 폄훼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MBC 김장겸 보도국장과 박상후 전국부장을 유가족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19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성주 언론노조 MBC 본부장은 이날 자사 세월호 보도의 진상 규명과 보도국 간부들의 막말 발언 사과를 촉구하는 1인 삭발시위에 들어가며 “보도국 수뇌부가 색출과 제거를 모의할 뿐 무엇이 잘못인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BS와 SBS는 15일 자사의 세월호 참사 보도를 공개 비판하는 리포트를 내보냈으나 MBC는 침묵하고 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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