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이곳 삶과 문화 코너에 글을 써 왔다. 코너 제목은 ‘삶과 문화’이지만,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라고, 그것 역시 모두 ‘삶과 문화’ 아니겠느냐고 담당자가 꼬드기는 바람에 홀랑 속아 쓰기 시작한 칼럼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처음엔 한 삼 개월 쓰면 필자가 바뀌는 줄 알았다). 실제로 그 기간 나는 한국일보로부터 원고에 대해선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았는데, 그건 수년 전 이곳 지면에 ‘길 위에 이야기’라는 짧은 코너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내가 쓴 원고 때문에 담당 기자가 두 번의 큰 곤욕을 치렀는데, 한 번은 모터사이클 동호회 회원들에 대한 설익은 비판 원고 때문이었고, 또 한 번은 해병대 체험 캠프에 대해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짓 좀 그만하자고 쓴 글 때문이었다. 모터사이클 동호회 회원들에 대한 글은 내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쓴 글이어서 바로 자세를 고쳐 ‘급 사과’할 수 있었지만, 해병대 사령부로부터 온 항의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건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이지, 사과할 일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또 그만큼 한국일보 담당 기자가 나를 지켜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 문제 없다고,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된다고, 정당치 못한 항의는 우리가 다 막아주겠다고.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삶과 문화 원고를 쓰면서 그 어떤 외부 항의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지지난 정부 때보다 더 첨예한 갈등과 부조리에 휩싸였고, 이런저런 인권의 침해가 난무했지만, 나는 내가 쓴 원고로 인해 그 어떤 피해나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역설적으로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쓴 글들이 그 모든 갈등과 부조리에 눈감고 회피했다는 뜻이다. 자유롭게 쓰라는 말에 등을 기댄 채, 이리저리 피해 다닌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의 상처이다.
과연 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길 위의 이야기’를 쓸 당시의 나와, ‘삶과 문화’를 쓰고 있는 나 사이엔 과연 어떤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회피하고 싶지만,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길 위의 이야기’를 쓸 당시, 나는 평범한 전업작가 신분이었다. 그리고 ‘삶과 문화’를 쓰고 있는 2014년의 나는 지방의 한 사립대학교 교원 신분이 되었다. 그런 신분의 변화는 외면적으론 원고를 쓰는 데 있어서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내가 속해 있는 대학교는 교원들의 외부 강연이나 원고에 대해서 그 어떤 제지도, 사전 사후 검열도 행사해본 적이 없다. 최대한 소속 교원들의 표현자유를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표현의 자유’를, 그 가두리를, 스스로 한정 짓고 말았다. 지방 소규모 사립대학교의 선생으로서, 원고를 쓸 때마다 정부에서 대학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런저런 사업이나 평가가 떠올랐고, 내가 쓰는 원고와 그런 사업의 연관성이 희박하고 또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알아서, 스스로, 조심해버린 것이다. 나로 인해 혹시나 학생들 장학금 혜택에 문제가 생길까 봐, 교육 여건에 피해를 줄까 봐, 그러니까 속해 있는 공동체에 손상을 입힐까 봐, 표현의 자유를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해버린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기 검열’이 작동해버린 것이다.
본질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 역시 글쟁이들에겐 직무유기이다. 공동체의 습속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자유와 책임을 외면하는 것 또한 글을 쓰는 자들에겐 비난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왜 지상파 기자들은 ‘기레기’가 되었는가?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검열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당분간 이런 식의 칼럼은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어쩐 일인지 나는, 나와 같은 무수한 태도들 때문에 세월호 사건도 벌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한국일보와 그 독자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내 보잘것없는 인식으로 모두를 속인 기분이다. 늦었지만, 이제 그만 멈출 때가 됐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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