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ㆍ안인희 옮김
돌베개 발행ㆍ256쪽ㆍ1만3,000원
독일 역사상 가장 고약한 악당 아돌프 히틀러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1973), 에베르하르트 예켈의 히틀러의 세계관(1969),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1978)이 ‘히틀러 책 3걸’로 꼽힌다.
독일 국민작가인 저자 하프너(1907~1999)가 지은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작지만 무게 있는 책이다. 250여쪽 분량의 작은 판형 책이지만 ‘히틀러 현상’의 전체 의미를 놀랍도록 간결하게 요약한다. 그러면서도 정교함을 잃지 않는다. 생애, 성과, 성공, 오류, 실수, 범죄, 배신 등 7개 장으로 나눠 히틀러를 낱낱이 짚고 넘어간다.
하프너가 히틀러의 56년 생애를 설명하는 단 한마디는 ‘결핍’이다. 히틀러의 삶에서는 한 인간의 품위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감쪽같이 빠져 있다. 교육, 직업, 사랑, 우정, 결혼, 아버지 노릇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정치와 정치적 열정을 빼면 아무 내용이 없는 삶, 너무나 가벼워서 쉽게 내동댕이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언제든 자살할 수 있다는 각오가 히틀러의 정치 경력을 따라다녔고 마지막에는 당연하게도 자살했다.
히틀러 신드롬을 분석하는 대목도 기존 시각과 다소 다르다. 하프너는 경제 기적 등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에 주목한다. 히틀러가 총리가 된 1933년에는 600만명의 실업자가 있었으나 1936년에는 완전고용이 실현된다. 10만명에 불과했던 독일군은 1938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됐다. 하프너는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이 고도의 선전술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눈 여겨 보라”며 “실로 엄청난 성과가 눈 앞에 펼쳐지자 나치당원이 아닌 사람들조차 그 업적에 반했고 국민의 90%가 총통 신자가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알듯이 저자도 “히틀러는 대량학살을 저지른 범죄자”로 단정한다. 군사ㆍ정치적 목적 없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점에서 히틀러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 보다는 차라리 연쇄 살인범의 범주에 속한다고 덧붙인다. 결국 히틀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독일이라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유대인 말살마저 불가능해지자 민족의 죽음을 기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젊고 싱싱한 책”이라는 호평과 함께 격렬한 반박을 산 책이라서 그런지 히틀러 관련 책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