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3인칭 대명사 ‘그녀’는 일본어 ‘카노죠(彼女)’에서 유래한 단어다. 식민지 시대부터 쓰였으니 역사가 채 100년이 안 된다. 나는 글을 쓸 때 이 단어를 사용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많은데, 그 유래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은 아니다. 일본제 단어는 워낙에 부지기수라 피하려야 피해갈 수도 없다. 다만 내 글에 등장하는 어떤 이를 ‘그녀’라고 지칭하는 순간, 그 사람이 가진 수많은 특성들은 거세되고 ‘녀(女)’라는 성만 도드라지는 기분이 들어 불편해진다. 엄마를, 할머니를, 벗들을, ‘그녀’라고 쓰기가 쉽지 않다. 여자임이 분명하더라도, 나와 맺는 관계 속에서 오직 여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대명사를 써야 할 경우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그’로 통일시켜 보려 한 적도 있다. ‘그녀’라는 단어가 성별을 표나게 강조하는 것과 달리 ‘그’라는 단어에는 딱히 남자라는 정보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막상 그렇게 써보니 습관의 벽이 또 만만치 않음을 깨닫는다. ‘그녀’라고 할 때와는 거꾸로, ‘그’라고 하면 여자라는 점을 억압하는 것 같아 다시금 불편하다. 문맥이 확실히 받쳐주지 않는 경우 남자로 오해될 여지가 크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녀’의 반대말로 ‘그남’이 있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나는 나의 여자들을 글 속에 등장시켜야 할 때 ‘그’와 ‘그녀’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삶과 언어의 간극을 이렇게 또한 절감한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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