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 한국SC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지난 10년간 해외 본사로 송금한 금액이 3조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배당금보다 상대적으로 감시가 덜 하고 세금이 적은 용역비를 다양한 명목으로 더 많이 챙겨갔다. 금융당국은 이달 말부터 진행되는 씨티은행 검사에서 이 문제를 살펴본 뒤 외국계 금융사 전체로 조사 확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씨티은행과 SC은행 등 외국계 자본이 100% 지분을 보유한 2곳 은행에서 지난해까지 10년간 해외 본사로 송금된 돈은 3조2,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씨티은행이 1조8,800억원, SC은행이 1조3,700억원이다.
송금액 중 용역비(MRㆍ관리비용 분배계정)가 1조9,400억원으로 배당금(1조3,100억원)을 훨씬 웃돌았다. 특히 씨티은행의 경우 용역비(1조2,200억원)가 배당금(6,600억원)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용역비는 경영자문료나 기업이미지 통합(CI) 비용, 전산서비스 이용료, 광고비 등의 명목으로 본사에 지급하는 금액. 사용 목적이나 내역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법인세와 배당세(약 37%)가 부과되는 배당금과 달리 용역비는 10%의 부가세만 내면 된다. 이에 따라 씨티은행 노조는 사측을 금융당국에 조사까지 의뢰한 상태다. 씨티노조 관계자는 “한미은행과 합병할 초기에는 용역비가 200억원대에 불과했지만 이후 매년 순익과 상관없이 증가해 지난해 1,850억원에 달했다”며 “작년 순익(733억원)에 비해 이렇게 과다하게 용역비를 책정하는 것은 배당금과 달리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과도한 해외 송금 문제는 단지 외국계 은행만의 얘기가 아니다. 알리안츠생명은 작년 5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지만 용역비로 30억원 이상을 본사에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고, ING생명은 지난 2011년 당기순이익(1,630억원)의 2배가 훨씬 넘는 4,000억원의 고배당을 추진하다 금융당국의 제동에 걸린 바 있다. 외국계 무디스가 소유한 신용평가사 한국신용평가 역시 배당률이 90%에 달한다. 순익의 대부분을 본사에서 가져간다는 얘기다.
이들 외국계 금융사는 이처럼 막대한 돈을 본국으로 송금하면서 정작 경영 악화의 책임은 국내 직원들에게만 전가한다. 씨티은행의 경우 실적 악화가 거듭되면서 점포 폐쇄 등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 이 와중에도 하영구 씨티은행장은 올 1분기 16억5,800만원의 보수를 챙기며 ‘은행권 연봉 킹’ 자리를 고수했다. 한 외국계 보험사 관계자는 “외국 회사들은 국내 임원들에게 성장보다는 본사에 얼마나 많은 금액을 송금하느냐를 중시한다”며 “이런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경영진을 임명 한 후 최고 수준의 연봉과 성과급을 보장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26일부터 약 1개월간 진행되는 씨티은행 검사에서 용역비 지급의 적절성 등을 살펴볼 예정.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 기회에 외국계 금융사들이 편법으로 국내에서 돈을 빼내가는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