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고세훈 교수가 쓴 조지 오웰의 평전(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을 읽으며, 그의 안내에 따라 내가 놓친 오웰의 글들을 다시 찾아 읽으며, 지난 한 달을 보냈다. 그 독서는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 이후의 참혹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내가 선택한 피난처 같은 거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거기도 그리 든든한 피난처는 아니었다. 참사와 아무런 관련 없는 어떤 구절들 위로, 자주, 진저리 나는 현실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령 고 교수는 에 묘사된 전체주의 권력의 한 단면을 들추며 이렇게 썼다. “권력은 복종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거기엔 억압받는 자의 고통과 굴욕이 따르며, 그 고통과 굴욕은 마침내, 윈스턴이 그랬듯 그가 빅 브라더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데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전체주의 동조자들의 세계관을 채색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사실이라는 것이 오웰의 믿음이었다.”
저 구절을 읽으며 나는 유족과 시민들을 가로막은 세 겹 네 겹의 경찰과 청와대 대변인의 ‘순수 유가족’ 발언을 떠올렸다. 13일 교사 43명은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아이들, 그리고 국민을 버린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는 교사 선언'을 게재했고, 스승의 날인 15일에는 교사 1만5,852명이 유사한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정부는 관련자 전원을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위 앞에 고분고분 엎드리지 않는 의견은 설사 그것이 자식을 잃은 유족의 분노라고 하더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권력의 오만이 빅 브라더의 욕망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통제되고 순치된 것들만 수용하는 시스템 권력은, 빅 브라더를 향한 사랑이 허구인 것처럼, 민주적 권력일 수 없다.
내가 책에 숨어 있는 사이 전국에는 수많은 분향소가 차려졌고 조문이 이어졌다. 교사 선언은 “(정부가) 정권을 향한 희생자 가족과 온 국민의 분노를 오직 추모 분위기에 가두고,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해 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하지만 나는 그 ‘추모 분위기’에 온전히 스미지 못했다. 행정적 무능 이전에 권력의 말과 행동과 태도에서, 이게 바닥이려니 했던 절망이 다시 분노로 솟구쳤다가 더 깊이 절망하기를 반복하면서, 이제 울혈처럼 맺힌 내 감정의 실체가 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분노에 슬픔이 압도돼 순수하게 애도하지 못하는 시간들. 저 수많은 분향소의 조문 행렬이 내겐 처절한 침묵의 시위, 시퍼런 분노의 퍼포먼스로 여겨진다.
제대로 삭여지지 않고 내면화한 분노는 정치적으로 더 극단화한 선택의 논리를 강화할 것이다. 지지 정당과 인물에 따라 유권자 개인의 공적 윤리의식까지 판단되곤 하는 한국 사회의 정치 풍토에서 이제 우리는 복지와 성장, 분배와 안정 사이의 호사스런 선택이 아니라 누구를 뽑아야 내 목숨을 유지하고 내 생명을 존중 받을 것인지 판단해야 할 판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은 고단한 삶이고,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정치는 야비한 사회다. 나는 이 정부가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 보인 무능보다 순수하게 애도할 기회조차 주지 못한 저 옹졸한 무능이 더 안타깝고, 두렵다. 그리고 우린 어쩌면, ‘사고대책본부’라는 곳에서 집계한 희생자 숫자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요컨대 한국 정치의 어떤 가능성을 훼손당했는지 모른다. 오웰의 글을 읽으며 나는 내 안의 냉소와도 힘겹게 싸워야 했다.
많은 이들이 ‘잊지 말자’고, ‘잊지 않겠다’고 한다. 기억이 맘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닐 테지만, 나는 빨리 잊고 싶다. 그래서 더는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와서,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한참 뒤 느꼈다는 ‘건조한 슬픔’같은 감정 안에서나마 간신히 애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애도에는 잃어버린 내 삶의 어떤 가능성에 대한 애도, 더 지체돼버린 한국의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애도도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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