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문을 연 수도권의 한 주택전시관(모델하우스). 건물 내 1층과 2층에 각각 소방 호스가 설치돼 있고, 가끔씩 비상구와 소화기 위치를 안내하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관련 조치를 강화했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청약 희망자들로 가장 붐비는 평형 별 견본주택에 들어가보면 사정이 전혀 달랐다. 설치된 4개 세대 가운데 별도 비상구가 있는 곳은 단 한 곳이었고, 그마저도 별도 안내 표시가 없을 뿐 아니라 비상구는 어른 허리 높이 이상으로 설치된 난간을 넘어가야 이용할 수 있었다. 모델하우스 방문객이 40, 50대 이상 주부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화재 등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다른 세대 견본주택들 역시 규정에 따라 내부에 2개의 소화기를 설치하고 있었지만, 역시 모두 난간 밖에 동떨어져 있어 비상시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2층에 설치된 2개 세대의 경우 지상으로 탈출이 가능한 별도 계단이 없었다. 해당 시청 담당자와 건설사 관계자에게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자 “견본주택 내 안전시설 규정이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올해 들어 분양시장이 살아나면서 주말의 경우 견본주택에 수만 명의 청약희망자들이 몰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주택전시관은 화재 등의 재난에 취약한 실정이다. 특히 견본주택 건축에 대한 관련 규정이 있음에도 관련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관계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토교통부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가운데 제 8조 견본주택 건축기준에는 ‘각 세대에서 외부로 직접 대피할 수 있는 출구를 1군데 이상 설치하고 직접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을 설치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왜 이를 준수해야 할 지자체나 건설사들이 규정 자체를 잘 모르는 것은 주택과 건축물을 관리하는 법과 부서가 나뉘어 있는 복잡한 행정체계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견본주택 안전규정을 건축 허가를 담당하는 건축과 소관으로 여기고 있다. 견본주택이 설치 운영되고 있는 한 시청의 건축과 담당자는 “견본주택은 가설건축물이기 때문에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용된다”며 “지자체에서 따로 시설을 확인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가설건축물축조신고’만 하면 별도의 준공허가나 사용승인이 없이 견본주택을 개관할 수 있기 때문에 견본주택의 안전 시설은 건설사가 자율적으로 설치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견본주택 건축기준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라 각 지자체의 주택과 소관 업무인데, 건축 허가를 담당하는 건축과 직원이 해당 사항을 몰라 혼선이 생긴 것”이라며 “이 같은 지자체의 혼선을 일일이 파악해 시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견본주택을 ‘주택’으로 분류해 관련 안전규정을 만들었는데,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견본주택을 ‘신축 건물’로 적용하면서 안전규정 관리 책임주체가 모호해진 것이다.
이런 제도의 허점 때문에 한꺼번에 1만명 이상이 몰리는 견본주택이 안전점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제로 세대 내에 별도 출구를 설치한 경우는 거의 없고, 비상구가 있더라도 협소하거나 물건 등이 입구에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달 초 서울 강서구에 문을 연 한 견본주택도 건물 전체에 외부로 이어지는 비상계단은 단 한 곳뿐이었는데 공간이 협소해 대피로로 적합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견본주택은 일회성 자재를 많이 사용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주말마다 연인원 1만5,000~2만여명의 내방객들이 몰리는 만큼 위급상황 발생시 안전대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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