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4월에서 5월로 계절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깨닫지 못한 것은, 이 미증유의 참화로 온 나라가 슬픔에 젖고 그로 인해 잔인한 4월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5월, 그것도 중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며칠 전 한국일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보며 비로소 실감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겠다며 진도 팽목항에 도착한 그 사진이, 언제부턴가 잊고 지낸 5월을 기억나게 했다.
광주민주화 운동은 5월의 상징이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언급하지 않고는 한국 현대사의 5월을 말할 수 없다. 5ㆍ18 희생자 어머니 모임인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은 진도에 도착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34년 전 꼭 이 맘 때가 생각나 지나칠 수 없었다. 이번 주가 5ㆍ18주간이어서 같은 아픈 마음에 이곳을 찾아왔다.”
진도를 찾은 5ㆍ18 유가족의 눈물에는, 광주의 아픔과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라는 두 겹의 고통이 녹아 있다. 5ㆍ18 유가족의 사진은 그래서 그들이 세월호 유가족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슬픔을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의 고통은 소설가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에도 나와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중학교 3학년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소년의 죽음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면서 내밀한 상처를 살핀다. 한강은 소설을 쓴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광주의 5월이 인간의 참혹한 내면을 참혹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걸 뚫고 나가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엄과 고귀함에 다다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광주는 인간의 존엄과 관련한 문제가 된다. 그 광주를 잊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망각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팽목항의 5ㆍ18 유가족을 보고서야 한국 사회가 광주를 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올해 5ㆍ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잠시 귀를 세우는듯하면서도 그날을 자꾸 기억에서 밀어내고 있다. 광주 유가족에게는 그날의 아픔이 뼈에 사무칠 테지만 이 사회는 짐짓 알만큼 안다며 무심하거나 태연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세월호 참사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광주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억이 3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졌듯, 세월호 참사의 기억 또한 훗날 건조한 역사적 사실로만 남을 수 있다. 슬픈 역사의 되풀이가 얼마나 안타깝고 고통스러운지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충분히 확인됐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기억은 단순히 어떤 장면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게 아니다. 기억은 깨달음이고 행동이다.
깨달음과 행동은 결국 가치의 문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믿어온 가치가 뿌리째 흔들린 사건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런 가치를 거부할 때가 됐다. 독일 카셀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김덕영 교수가 한국이 경제적 근대화에만 빠져 다른 분야의 근대화를 외면했다고 주장한 것은 여러 면에서 경청할 만 하다. 그는 한국이 경제 근대화에 몰두하고 정치ㆍ사회ㆍ문화적 근대화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방해 요인으로 간주했다고 말한다. 그 같은 성장주의가 편중된 근대화를 초래하고 개인의 삶을 불균형하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세월호 참사를 낳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깨달음과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런 가치를 부추기고 강요하는 세력과 맞서야 한다. 세월호 사태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봉건적 사고와 과장된 대결주의에 눈멀어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훗날 우리의 기억을 흐리게 만들고 역사의 비극을 반복시킬지 모른다.
박광희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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