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목소리가 떠올라 미칠 것 같습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성소국장 상지종(49) 신부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부모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지난 5일 어린이날 서울 대한문 거리미사에서 상 신부가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읽었을 때 많은 미사 참석자들이 함께 슬퍼했다.
상 신부는 1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시종 또박또박 세월호와 한국사회를 이야기했다. “세월호 참사만 떼어놓고 보면 안 됩니다. 최근 몇 년간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문제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자본과 권력이 생명보다 우위에 서는 ‘주객전도’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고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라고 강조했다. “기억은 천주교에서도 중요한 신학적 용어입니다. 미사 자체가 예수의 최후 만찬, 십자가 죽음, 부활을 기억하는 겁니다. 기억은 어떤 일을 잊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삶의 자리에서 현재화시키는 일입니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지만, 아파서 잊는다면 희망은 없습니다.”
상 신부는 우리 모두 반성하고 스스로는 물론이고 사회 자체를 바꾸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진상규명, 지위고하를 막론한 책임자 처벌, 사회 전반의 개혁 중요성도 강조했다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고 통치자는 누구보다도 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은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책임만 묻겠다는 건 통치자다운 태도는 아닙니다.”
대부분 성직자가 그렇지만, 상 신부는 특히 생명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2012년 간암 판정을 받은 신학교 동창 신부에게 자신의 간을 3분의 2나 선뜻 떼어준 것도, 용산참사와 4대강 등 주요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대한문 월요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원래 간이 안 좋은 친구였는데 본당 주임신부를 맡아 성당을 새로 지으면서 과로를 했어요. 평소 ‘내 간을 떼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말이 씨가 된 거죠. 새 생명을 줬으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웃음)”
상 신부는 늦깎이 신부다.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잘 나가는 광고회사에 5년 다니다가 신학교에 들어갔다. 대학 2~3학년 때부터 사제의 길을 고민하다가 졸업과 동시에 신학교에 편입하려고 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회사에 취직했다. 나중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신학교를 간다고 하자 그토록 반대했던 부친도 “하느님 일을 사람이 어떻게 막겠느냐”고 허락했다.
상 신부는 사제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냥 신부로 사는 거죠.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미사 드리고 강론하고 교육하는 거죠. 좀 더 많은 국민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연대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슴 아픈 편지를 쓰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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