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소설가
패관소품문의 귀재 김려(1766-1822)는 젊어서부터 폐병을 앓았다. 이옥, 김조순과 함께 ‘불량선비’ 강이천도 절친한 벗이었다. 1797년, 서해에서 진인이 나타났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죄로 강이천이 붙잡혔을 때, 김려도 끌려가 문초를 당했다. 겨우 목숨을 건져 유배를 떠난 곳이 함경도 부령이다. 된바람 맞으며 북녘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간 겨울이 김려에겐 고통 그 자체였다. 폐병이 도져 피를 토하면서도 붓을 들고 귀양길의 고단함을 문(文)과 시(詩)로 옮긴 작품이 감담일기(坎?日記)다. 언 손을 입김으로 불며 써내려간 글만이 김려를 위로한 것이다.
술이라도 몇 잔 마시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봄밤이다. 4월 16일 첫날 탈출한 승객 외에 구조자의 숫자는 ‘0’에 머물렀고, 긴급구출 대상자가 사망자로 옮겨가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며 잠들고 또 깨어났다. 취해 누운 밤에도 금방 잠이 오지 않았다.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다. 김려라면 무엇인가를 또 썼겠지만, 나는 겨우 책 몇 권을 집어 읽었다. 힘들 때마다 되풀이해서 읽는 내 인생의 책들이다. 어린 왕자의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술꾼의 별이 먼저 눈에 띄었다. 어린 왕자가 술꾼에게 술을 마시는 이유를 묻는다. 술꾼은 잊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어린 왕자는 무엇을 잊기 위해서냐고 다시 묻는다. 술꾼은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뭐가 그렇게 부끄럽냐고 또다시 묻자, 술꾼이 답한다.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게 부끄러워!” 난 정말 부끄러웠다. 눈앞의 술병부터 치웠다.
어린 왕자의 별로 갔다. 그 별은 아주 작아서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리는 것만으로도 어둠을 유예할 수 있었다. 어린 왕자는 마음이 아주 슬플 때 지는 해를 본다며, 마흔 세 번이나 해가 지는 걸 본 저녁도 있다고 밝혔다. 나는 적어도 삼백 하고도 네 번은 의자를 뒤로 옮기며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그 바다에서 최후를 맞은 이들의 삶을 어찌 단 하루의 저녁으로 넘길 수 있으리! 삼백 번이 아니라 삼천 번 혹은 삼만 번을 미루더라도, 그들이 망각의 어둠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일러주지 않았는가.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에게 네가 바친 시간들이야.”
여우의 충고는 어린 왕자와의 만남을 소설로 쓴 생텍쥐페리의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는 어린 왕자가 ‘옛날 옛적 어린 왕자가 살았지요.’로 시작하는 그렇고 그런 동화로 읽히길 원치 않았다. 생텍쥐페리는 강조했다. “내가 여기서 그의 얘기를 쓰는 것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친구를 잊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나도 숫자밖에 모르는 어른이 되어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김려가 붓을 놓지 않은 것은 글 솜씨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갑자기 닥친 불행을 모조리 기억하고 이겨 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험한 길을 걷듯 한 글자 한 글자 피와 땀의 순간을 아로새긴 것이다. 생텍쥐페리와 김려의 작품들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내 손에 붓을 쥐어주는 듯했다.
장편소설 불멸에는 이 소설의 지은이 밀란 쿤데라가 작중인물로 직접 등장한다. 등장인물 쿤데라는 이번 소설 제목으로 ‘불멸’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어울린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제목을 벌써 다른 작품에 써먹었으니 다시 취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세월호 참사처럼 망극한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나는 이미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란 장편소설을 오래 전에 출간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밤, 제목부터 궁리하며 책상으로 다가가서, 사막에 불시착한 야간비행사처럼 앉은 내게 어린 왕자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밤마다 별들을 바라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아저씨에게 가리켜 줄 순 없어. 오히려 더 잘 됐지, 뭐. 내 별은 아저씨에겐 여러 별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거지. 그럼 아저씬 어느 별이든지 바라보며 즐거워할 테니까. 그 별들이 모두 아저씨 친구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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