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치 높아
"해운대 난개발 가슴 아파"
"미인을 못난이 만드는 짓"
부산 해운대에서 태어나 평생 향토사 연구에 매진한 학자가 있다. 교직에서 40년 간 역사교육을 한 뒤에도 부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책을 집필해왔다. 재야학자로 분류되지만 부산에선 가장 풍부한 향토사 지식과 자료를 가진 ‘이야기꾼’으로 불린다. 그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동해남부선 폐선부지에 대해 “가만히 두는 게 가장 좋은 개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적 가치가 무척 높다는 게 그 이유다. 주영택(76) 가말골향토역사연구원장을 만나 향토사적 관점에서의 개발 방향 등을 들어봤다.
-동해남부선 옛 철길은 어떤 역사를 가졌나
“해운대에서 나고 자랐으니 동해남부선 철길과의 추억이 많습니다. 철길을 걸으며 통학을 했고, 첫사랑과의 연애를 위해 매일 기차를 탔던 적도 있습니다. 1930년 착공된 동해남부선은 당시 부산 도심에서 해운대로 빨리 이동하고 싶어한 일본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해운대의 경치를 보며 온천을 즐기기 위해 일본인들이 애용했던 거죠. 또 일제가 우리의 소중한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이용됐습니다. 그걸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상들이 죽고 다쳤겠어요. 다시 말해 우리 선조의 고된 삶이 고스란히 묻은 곳입니다.”
-어떻게 개발하는 게 옳은 방향인가
“폐선이 되자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일단 레일바이크를 놓는 등 상업 개발은 결코 반대합니다. 해운대는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입니다. 비유하자면 미인을 성형시켜 못난이로 만들겠다는 것과 같은 논리죠.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시민단체가 그곳에서 장승을 만들어 세우거나 행사를 열어 훼손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시민들이 걷기 불편한 부분이야 손질해야겠지만 가급적 그대로 두는 방안이 가장 좋습니다. 연구해야 할 역사적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옛 모습 그대로를 보면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부산, 특히 해운대의 특징을 요약한다면
“부산은 저항과 끈기의 역사를 간직한 고장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민관군이 함께 저항한 곳입니다. 한국전쟁 때는 전국 곳곳에서 부산으로 모여들어 삶을 이어갔었죠. 또한 부산사람이 처음 자리잡은 해운대 장산 기슭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선조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살기가 좋은 곳입니다. 명산, 명해, 명강과 함께 온천까지 지닌 ‘사포지향’의 고장입니다. 요즘 관광도시로 뜬다는 말이 있는데 원래 유명한 관광지였습니다. 그래서 최근 벌어진 해운대의 난개발을 보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해운대는 봄이 가장 먼저 온다는 의미의 ‘춘천’이 흐르는 곳입니다. 동쪽에서 불어 온 봄바람이 춘천을 타고 장산을 넘어 한반도로 확산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높은 건물에 부딪혀 바람이 돌아갑니다.”
-역사 분야 중 유독 향토사 연구에 매진한 이유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면서 우리 고장의 역사는 어떠한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변변한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면 도시락을 싸서 부산과 경남지역 곳곳을 돌아다녔죠. 참고할 자료도 전문가도 없었던 게 오히려 많은 노력을 이끌어 낸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며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도 없겠죠.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알아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결과이자 과정입니다. 그래서 향토사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주영택 원장은 누구
부산대 사학과와 경성대 교육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뒤 1965년 교직에 입문, 지난2000년 동백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에서 내려왔다. 부산시 편찬위원, 부산시 지명위원, 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우리고장 역사의 발자취’, ‘가마골 역사 이야기’, ‘주영택이 발로 찾은 부산의 전설 보따리’ 등을 집필했으며 녹조근정훈장과 해운대구민 애향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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