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단 50대 남성 이모씨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해. 앞으로 우리 어떻게 사냐.” 울먹이던 그는 하얀 국화꽃을 딸의 영정에 헌화했다. 이씨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로 경기 안산 단원고 교사로 재직하던 자녀를 잃었다. 딸은 실종 18일째인 이달 3일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차갑게 식은 몸으로 돌아왔다. 카네이션을 건넨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의 유가족은 “우리 애가 담임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11시 세월호 유가족 100여명과 생존 학생 학부모 30여명이 경기 안산의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 교사 7명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꽃과 빨간 카네이션을 올렸다. 똑같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지만, 교사로서 학생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학부모들 앞에서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한 희생 교사 가족들에게도 위안의 말을 건넸다. 눈물과 침묵이 휘감은 분향소 안에서 ‘건강을 비는 사랑’ ‘존경’이란 빨간 카네이션의 꽃말은 처연하기만 했다.
헌화에 앞서 유가족 권모(28)씨가 대표로 나와 제자들과 끝까지 함께 한 영령들에게 말했다. “제자에 대한 애정과 스승으로서의 책임감에, 저희 엄마 아빠는 그저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끝내 피어보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하신 선생님, 부디 영면하시고 그곳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주세요.”
말 없는 영정 앞에서 유가족들은 눈물을 훔쳤다. 한 유가족은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 했고, 다른 유가족은 “하늘나라에서라도 아이들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혼자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학생들 곁으로 떠난 강모 교감부터 세월호에서 생일을 맞은 김모 교사 등 7명의 영정 옆에는 빨간 카네이션과 학생들이 쓴 편지가 차곡차곡 쌓였다. “선생님 결혼식 축가는 저희가 부르기로 했잖아요. 선생님만 오시면 돼요.” “빨리 돌아오세요. 저희가 기다릴게요.” 편지 사연은 눈물을 떨구게 했다. 학생들이 쓴 편지봉투 위엔 ‘존경하는 선생님께’라고 적혀 있었다.
헌화 후 유가족들은 먼저 보낸 아이들을 대신해 빨간 카네이션을 전했다. 희생 교사 5명 대신 역시 가족들이 건네받았다. 꽃을 받고, 건네는 부모 모두 눈물로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유가족 박모씨는 “속 썩이면 혼도 내주시고 천국에서도 제 아들 잘 지켜주세요”라며 하늘나라에 있을 교사에게 나직이 당부의 말을 전했다. 유경근 세월호사고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얘들이 수학여행을 잘 다녀왔다면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했을 것”이라며 “우리가 이렇게 하면 먼저 간 선생님과 아이들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추모의 뜻으로 전국 대부분 초ㆍ중ㆍ고교에선 스승의 날 행사를 개최하지 않았다. 단원고 역시 학생 대표들이 교사들에게 음료와 함께 “힘내세요”라는 편지를 전달했을 뿐 별도의 행사 없이 보냈다. 박경조 단원고 운영위원장은 “선생님들이 꽃다발조차 사오지 못하게 해 원래도 단원고의 스승의 날은 조용한 편이었지만 오늘은 조용하다 못해 침통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영구차가 들어오고, 부모들 흐느끼는 소리가 교실까지 울려 퍼지니까 숙연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안산=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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