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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실종자 찾을 때까지 약국의 불 끄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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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실종자 찾을 때까지 약국의 불 끄지 않겠다:

입력
2014.05.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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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24시간 운영되는 '팽목항 약국' 약사들이 새벽에도 불을 밝힌 채 실종자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24시간 운영되는 '팽목항 약국' 약사들이 새벽에도 불을 밝힌 채 실종자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잠이 오질 않는데, 도움 될 약 없을까요?”

15일 오전 2시, 팽목항에 짙게 깔린 어둠을 밟고 40대 남성이 약국을 찾았다. “힘내세요.” 약국을 지키고 있던 약사 최기영(56)씨가 수면유도제를 건넸다. 최씨의 인사 한 마디에 표정 없이 까칠한 남성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선착장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팽목항 약국’이 있다. 선착장 주변, 500m 이상 늘어선 자원봉사 천막들이 다음 날을 기약하며 불을 끄고 문을 닫을 때도 약국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등대가 밤새 새까만 밤바다의 어선들을 지키듯, 팽목항 약국은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항구를 밤새도록 지킨다.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 많은 실종자 가족들이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피붙이를 안고 팽목항을 떠났고, 일거리가 줄자 자원봉사자들도 상당수 떠났다. 사고 초반 하루 2,000여명이 찾던 약국의 손님도 하루 150여명으로 줄었고, 새벽에는 거의 찾지 않는다. 최씨는 “주변에서는 약국 운영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줄여 보라고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두고 약국 불을 끌 수는 없다”고 말했다.

팽목항 약국은 약사 박병훈(55)씨가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이 운영하는 진도읍내 약국의 약을 싸 들고 팽목항을 찾으면서 문을 열었다.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들 사이를 누비며 신경안정제 등을 나눠주다 보니 준비한 약은 금세 바닥났다. 박씨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쯤 대한약사회 전국 16개 시도지부 약사들이 힘을 보탰다. 이들은 약 도매상들의 도움을 얻어 부족한 약을 채워 넣고, 약국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돌아가며 당번을 섰다. 이날까지 팽목항 약국을 다녀간 약사들은 200여명에 달한다.

약의 수요 변화는 실종자 가족들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참사 직후 청심환 같은 신경안정제에서 안구건조증에 사용하는 인공눈물, 피곤해 입 안이 허무는 구내염을 치료하는 약을 거쳐 수면유도제로 바뀌었다. 약사 김순례(56)씨는 “가족들이 얼마나 울었으면 눈물이 말라 안구건조증까지 생겼겠나. 항구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몸살 감기가 끊이지 않아 더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팽목항 약국의 약사들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않고 약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 다니기도 한다. 최기영씨는 비가 쏟아지던 지난 14일에도 수색 작업이 한창인 사고 해역의 바지선을 찾아 잠수사들에게 근육이완제, 소염진통제, 파스 등을 건넸다. 최씨는 “우리마저 불을 끄면 가족들이 더 외롭지 않겠나”며 “모든 실종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저 곁에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진도=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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