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전국의 1만5,852명 교사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다는 대신 세월호 침몰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을 했다. 제자와 동료의 희생을 추모하고, 총체적 무능을 드러낸 정부를 규탄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4용지 세 장 분량의 교사선언문과 선언에 참여한 교사 전원의 실명은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개됐다. 이들은 교사선언문을 통해 “의심스러우면 되물어야 한다고, 부당한 지시에는 복종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못해서 미안하다. 점수를 올리려면 의심하지 말고 정답만 외우라고 몰아세우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다는 핑계로 정답만 생각하라고 윽박질러서 미안하다”고 반성했다.
또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을 때, 대통령은 공직자들에게 문책 위협을 한 것 말고 무엇을 했느냐”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물었다. 이어 “철저한 진상규명과 뼈를 깎는 책임규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교사선언은 9일부터 15일 오전 9시까지 전교조 조합원 여부와 상관없이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전교조는 향후 정부가 교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제2, 3의 교사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교사선언문을 낭독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대통령 한 사람 퇴진한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며 “사고가 사건으로 변할 동안 정부가 무능을 넘어 방조했다. 그 방조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를 하고, 대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창립 25주년을 맞아 17일 서울 독립문공원에서 갖는 전국교사대회도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로 치른다.
교육부는 징계로 교사들의 행동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용학 교육부 교원복지연수과장은 “교사 100명, 200명이 연명해서 발표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진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징계 여부를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13일 ‘아이들, 그리고 국민을 버린 박근혜 정권의 퇴진 운동에 나서는 교사 선언’을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린 43명의 교사들에 대해서도 20일까지 신원을 확인해 징계할 것으로 보인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43명의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정권 퇴진을 말한 것이 아니라 공무 외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이에 정치적 중립성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며 “징계가 이뤄진다면 국민의 분노를 살 것이고, 전교조는 이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안산지역 교사 200여명도 이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실규명을 희망하는 안산의 교사들’ 이름으로 안산시 고잔동 문화광장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들은 희생된 학생들을 향해 “얘들아, 미안해, 선생님이 밝혀줄게”라고 연거푸 외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물리를 가르친다는 한 교사는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이 스승의 노래를 불러주는데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아이들이 주는 카네이션도 달지 못했다”며 “저도 아이들에게 ‘내 말이 답이니까 따르라’고 해 온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안산 성호중의 정태연 교사는 참사 희생자 이해봉 교사에게 편지를 띄웠다. 정 교사는 “작은 일에 큰소리 치고 아이들을 혼내는 제가, 그 차가운 바닷물에서 다시 한 번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하고 정성으로 가르치고 싶어 했을 선생님을 생각하니 그렇게 못나 보이더라”고 했다. 단원고 2학년 5반 담임교사였던 이 교사는 난간에 매달린 학생 10여명을 구조하고 남아있는 학생들을 더 구하기 위해 배로 뛰어들었다가 빠져 나오지 못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안산=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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